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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17. 2023

나는 안 괜찮단 말이야


주말에 딸들과 함께 <장화 신은 고양이:끝내주는 모험>을 봤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큰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너무나 감동받아 울 뻔했다.


결말도 좋았지만, 중간에 내게 깨달음을 준 장면이 하나 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별을 찾아 모험을 떠난 고양이 일행을 커다란 장미꽃 덩굴이 가로막는다. 일행은 장미꽃 덩굴을 칼로 베며 헤쳐나가고자 한다. 장미꽃은 베어지기가 무섭게 새로 자라나며 일행을 거세게 공격한다. 이때, 매우 긍정적인 강아지 페로만이 공격하지 않고 꽃에게 다가가 꽃향기를 맡는다. 꽃의 마음을 읽어준 것이다. 그러자 꽃은 스르르 길을 내준다. 




며칠 전 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막내딸이 막대기를 가지고 놀다가 이에 부딪쳤다. 살짝 흔들리던 이가 툭 빠져 버렸다. 많이 흔들린 게 아니라서 꽤 아팠던 것 같다.

"엄마, 나 막대기에 부딪쳐서 이가 빠졌어."

설거지를 하는 내게 딸이 빠진 이를 들고 다가왔다.

"어, 어차피 빠질 거였으니까 괜찮아."

나는 설거지를 멈추지 않고 힐끗 보고는 말했다.

딸이 입안을 휴지로 닦아 피를 보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프단 말이야. 피도 계속 나."

"피는 곧 그칠 거야. 괜찮아. 울지 마."

딸이 소리 내어 울며 멀어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딸이 어디 갔나 찾아보니 책상 밑에 들어가 울고 있었다.

"지윤아, 괜찮다니까 왜 계속 울어? 이리 나와. 안아줄게."

이때 내 속마음은 '도대체 뭘 더 어쩌라는 거야? 엄마 바쁘니까 그만 울고 나와라.'였다.

"싫어. 안 나갈 거야."

"그래. 그럼 울고 싶은 만큼 울고 나와."

나는 더 이상 딸을 달랠 여유가 없었다.


한참 뒤에 글을 쓰는 내 뒤통수가 따가웠다. 책상 밑에서 나온 딸이 나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이제 다 울었어?"

"엄마는 왜 자꾸 괜찮다고 해? 난 하나도 안 괜찮은데 왜 괜찮다고 해~"

딸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앗, 넌 안 괜찮을 수 있는데 나는 왜 자꾸 괜찮다고 한 걸까?

"그러게... 미안."

나는 아이가 속상해하는 상황을 빨리 수습하려 했으나, 결국은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막대기에 부딪쳐 이가 빠졌구나. 많이 아프고 속상하겠다.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말과 행동을 했다면,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딸이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음을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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