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묻지 않았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6년 가까이 모임을 했던 열명 남짓의 단톡방에서 말없이 나갔는데, 아무도 내게 왜 나갔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내 아들은 원래 없었다는 듯 졸업식장에서 그들끼리 사진을 찍어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들이 교실 청소를 했다. 몇 명이 입학 초부터 청소를 시작했고 난 뒤늦게 합류했다. 그 동네로 이사한 지 얼마 안돼 입학했기에 아는 친구가 없었는데, 그들은 이미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친분이 있었다.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던 나는 약간 겉도는 느낌으로 그 모임에 껴 있었다. 그나마도 얼마 안 가 막내를 임신하게 되면서 청소를 하러 나가지 않아 더 친해지기 힘들었다.
모임은 학년이 바뀌고도 계속 됐다. 엄마들 모두 좋은 분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벽이 느껴졌다. 나중에 어떤 오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걸 변명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은 뒤였다. 그 엄마들 모두 내 앞에서만 웃고뒤에서는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단톡방에서 누군가 내 말에 대꾸를 하거나 맞장구를 쳐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 모임에서 빠져줘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용기를 내는데 거의 6년이 걸렸고, 아이의 졸업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누구 한 명쯤은 물어봐 주길 바랐다. 그래도 따로 만나서 몇 번 밥을 먹었던 그분은 물어봐 줄거라 믿었다.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아이 졸업식 전날 그분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졸업식날 얼굴이나 보자 했는데 보지 못했다. 다음 날 모임 멤버들끼리 모여서 단체사진을 찍은 걸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보게 됐다. 마음에 찬바람이 불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찬바람이 분다. 그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라서 더 그렇다.
요즘 또 그 찬바람을 느낀다. 브런치 초반에 가까웠던 작가님들이 속도를 내 저만치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 거기에 나보다 늦게 브런치를 시작했는데도 감탄을 자아내는 글을 써내는 분들에 대한 부러움, 나의 계속되는 러브콜(좋아요)에도 묵묵부답인작가님들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나 지금 걸러지고 있는 건가. 믿고 거르는 작가, 써니.
마음속 찬바람이 입 밖으로 계속 새어 나왔다. 한두 분이 아닌 분들이 나를 외면할 때는 내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어정쩡하게 껴 있던 단톡방에서 슬그머니 나왔던 그때처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가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건가 싶었다.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 난 정말 소심하다.
그리고 나는 매우 단순하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내 글이 재밌다는 댓글이 달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글을 좋아하는 단 한 분을 위해 글을 쓴다더니,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냐. 글을 꾸준히 쓰는데 내게 가장 필요한 건, 필력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정신줄 꽉 붙잡고 버티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착각했었다. 브런치를 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를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