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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y 18. 2023

벽을 꼭 뛰어넘을 필요는 없지


  피아노를 잘 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별로 부럽지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만에 드디어 마음이 먹어졌다. 책 읽기 귀찮아하고 일기 한 줄 쓰기 피곤해했던 마흔아홉 살 아줌마는 이것저것 신나게 써재꼈다. 그저 쓰는 것에 몰두해 있다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으나 찾지 못한 문장, 내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흐름을 내 글이 아닌 다른 이의 글에서 만난다. 다른 이의 글에 가 붙어있는 그 문장들은 나를 거절하고 가버린 짝사랑을 보는 것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한 2022년 7월 15일로부터 10개월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글을 145편 다. 구독자수, 조회수 이건 내가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건 글을 145편 써서 발행했다는 것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모든 글을 즐겁게 썼다는 것이다. 이 글들을 쓸 때의 나는 즐겁거나 신나거나 행복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는 글을 쓸 때도 나는 행복했다.


  구독자수, 조회수는 감사한 일이다. 내 글을 읽고 라이킷과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10개월이나 꾸준히 글을 쓰지 못했을 거다.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진심이 담긴 응원과 격려를 받게 되면 능력이상의 일을 해내기도 한다는 걸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느꼈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 너무나 많은 이 공간에서 내놓기 부끄러운 글들을 용기 내 꾸준하게 쓰다 보니 몇 가지 제안 메일을 받기도 했다.


  한 달 전에 헤드라잇에서 제안 메일을 받았다. 이미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글을 올리고 있는 플랫폼이라 내게도 제안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제안 메일을 받고 보니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 처음 받은 제안은 자신의 경험담을 드라마로 만드는 스타트업 회사였다. 재밌을 것 같기는 했는데 시간도 없고 내 역량도 부족하다 생각해 응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받은 제안은 전자책 출판사에서 내 매거진 중 하나를 출판하지 않겠냐는 메일이었다. 이게 책으로 낼 정도로 재밌는 글이었나? 냉정한 판단으로 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내 발목을 잡는 건 두려움이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그러다 실망해 지금의 이 흐름이 깨질까 봐 내게 온 제안들을 회피하고 있는 거다. 나는 글을 왜 쓰는 걸까?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써도 되는 걸까? 내 글은 모두 쓰레기가 아닐까? 글쓰기 10개월 차, 두려움이 몰고 온 질문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다시 태어난다면 모델처럼 키가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요즘에는 외모는 아무래도 좋으니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노력으로는 쓸 수 없는, 다시 태어나거나 영혼을 갈아 끼워야만 쓸 수 있을 것 같은 글을 만나 충격을 받곤 한다. 그런 글들을 따라 써보려고 했지만 어색한 글이 되고 만다. 평소 꾸밀 줄 모르고 담백한 내 말투로 솔직한 나만의 이야기를 썼을 때가 가장 자연스러웠다. 난 그냥 일기나 써야 했던 걸까.


  나는 항상 이쯤에서 포기를 선택하곤 했다. 즐겁게 시작해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둘러보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들은 단단하고 높은 벽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벽을 뛰어넘으려다 다리가 부러질 것을 염려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벽은 점점 많아지고 높아졌다. 뛰어넘을까 주저앉을까 고민하다가 든 생각, 이걸 꼭 뛰어넘어야 할까? 난 높이뛰기보다는 오래 달리기가 자신 있는데... 느리지만 오래 달리기, 작년 어느 마라톤대회에서 만난 노장 마라토너처럼. 좋아서 하는 달리기에 꼭 어떤 이유가 필요하고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기 위한 계획서에 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10년간 기록하겠다고 썼었다. 그때 나는 10년 뒤에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 꿈에서 출발해 10개월을 달리는 동안 내 앞에 장애물이 놓이곤 했다. 장애물을 하나씩 넘으면서 내 꿈은 달라졌다. 10년 뒤에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10년을 즐겁게 사는 사람이 더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 


  내 눈앞에 벽은 지금껏 넘었던 장애물처럼 뛰어넘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뛰어넘어야 할 게 있다면 그건 내 마음에 생긴 두려움의 벽, 그건 아예 깨부수자! 내 망치는 댓글과 라이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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