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몰래 들어놓은 적금 통장에 돈 쌓이는 거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조회수가 올라가는 걸 살피고 있었다.
"열심히 쓰고 있거든."
뭔가 들킨 듯 따끔해져 성질을 내며 통계창을 닫으려는데 남편이 물었다.
"저건 뭐야? 미운 사람이 보낸 생일 선물? 미운 사람이 누구야?"
"앗, 보지 마!"
내 글 랭킹 3위인 글이었다. 그 글은 사업하다 말아먹고 일본으로 도망갔던 형님이 돌아와서 내게 생일선물을 보냈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내 심경을 적은 글이다.
남편은 내 필명을 알고 있지만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남편이 '미운 사람이 보낸 생일 선물'이라는 글을 찾아서 읽더니 말했다.
"이거 누나가 보면 어쩔라 그래?"
"형님이 이런 글 읽겠어?"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자기가 유명해지면 자기가 쓴 글이 자기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글 쓸 때 신중해야 돼."
"어?"
내가 유명해진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는데 남편의 말을 듣는 순간,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가만 생각해 보니 걱정이 됐다. 내가 지금껏 쓴 글에는 형님뿐 아니라 시부모님, 우리 엄마, 오래전 스쳐 지나간 인연들과의 사연이 많이 담겨있다. 난 그분들께 당당하게 내 글을 읽어보라고 할 자신이 없다. 솔직히 대놓고 이야기할 자신이 없어 글로 썼거나 그들이 내 글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에 쓴 글이다. 내가 유명해져서 그들이 내 글을 읽고 왜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썼냐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며 실망했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일단 한번 유명해지기라도 했으면 좋겠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면 난 뭘 쓰지?'
남편의 말대로 나중에 누군가의 원망을 듣거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질 뿐이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를 비하할 목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자기 검열은 늘 해야 할 것이다.
처음 글을 쓸 때 내 일상을 작품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행복했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닌 읽는 이에게 공감과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 글의 조회수가 19만 몇천쯤 됐을 때, 앞자리를 2로 빨리 바꾸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음 메인에 걸릴 만한 글을 써보자 싶었다. 음식사진? 호기심을 끌만한 제목? 몇 번의 시도가 먹히지 않아 그만 두자 싶었을 때, 4개의 글이 다음 메인에 걸리며 총 조회수 27만이 넘었다. 그걸 계속 들여다보며 마음이 들떠 새로운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 내 발목을 잡는 건 내 글이 아니라 조회수 폭등이다.
통계 그래프에 커다란 빌딩 하나가 지어지고 며칠 뒤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붕 떴던 마음이 다시 평지로 내려오고 나서야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깐 즐겁고 아무런 쓸모없는, 오히려 꾸준한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저 숫자와 나는 애증의 관계가 돼가고 있다.
언니가 엄마와 내게 옷을 사줬다. 최근 시작한 보험영업이 너무 적성에 잘 맞는다고 한다. 이번달 실적이 좋아 통장에 기분 좋은 숫자가 찍혔다고 한다. 언니가 통장의 숫자를 이야기할 때 나는 내 글 통계의 숫자를 자랑했다. 언니의 숫자는 엄마께 효도를 하고 나를 기쁘게 해 줬다. 나의 숫자는 오직 나에게만 즐거움을 준다. 내가 가진 숫자들은 물건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 서글픈 마음이 또 내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 유명해져서 내 글이 내 발목을 잡기 전에 내 발목을 잡을 것들이 널리고 널려있다.
써니, 유명해져서 네 글이 발목을 잡을지 아닐지 알려면 일단 유명해질 때까지 글을 써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