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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May 04. 2023

난 불완전한 존재야

 

  주말(4월 15일)에 남편과 연극을 보러 마곡 엘지아트센터에 갔다. 종이티켓을 발급받으려고 하니 모바일티켓이라 인쇄할 필요가 없고 QR코드 부분을 눌러 바코드가 나오게 해 입장 시에 고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그동안 봤던 공연들은 모두 기계에 QR코드를 찍으면 종이티켓이 인쇄되어 나왔었다)


  여유 있게 공연장을 둘러보다가 시작 20분 전에 입장하려고 바코드를 펼치려 하니 오류가 났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그냥 종이티켓으로 달라고 했지만 모바일티켓으로 이미 발권이 된 상태라 안된다고 앱을 업데이트받아 보라고 했다. 앱을 업데이트하고 다시 로그인하려고 하니 아이디, 비번이 생각 안 났다. 늘 자동 로그인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인증을 위해 인증번호를 받아 아이디, 비번을 재설정하는데 재확인을 누르면 자꾸 틀리다고 나왔다. 마음이 급해지자 한 번 누를 거 두 번 눌러서 엉뚱한 페이지로 넘어갔고 화가 나면서 손이 떨렸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결국은 남편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남편이 마무리해서 바코드 창이 열렸고 늦지 않게 입장할 수 있었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 앉으니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몇 달 전부터 매사에 긍정의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살겠다 다짐하고 노력했지만 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흔들리고 말았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숨을 쉬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처음 겪는 상황이니까 그럴 수 있어. 난 일할 때 프로그램 제대로 작동 안 되고 그런 상황 많이 겪어봤지만 자기는 처음이잖아. 그래도 자기가 사람 많은 데서 짜증 내니까 좀 창피하더라. 집에서는 아무리 성질내도 괜찮지만. 이게 뭐라고 벌벌 떨어. 이 불완전한 존재야."


  '불완전한 존재'라는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아까 그렇게 짜증이 난 것은 모든 상황이 완벽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도, 그 상황을 빨리 해결 못하는 것도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왜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하지 못하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컴퓨터도 불완전해서 오류를 내는 판에 인간인 내가 모든 상황을 제어하겠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이다.




  남편과 본 연극은 '파우스트'였다.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고 굉장히 난해하다고 하여 연극으로 보면 좀 쉬울까 싶었는데 역시나 어려웠다. 남편은 졸았다. 나는 혹시나 재미있어질까 하고 두 눈 부릅뜨고 열심히 봤다. 노인 파우스트역에 유인촌, 젊은 파우스트역에 박은석, 악마 메피스토역에 박해수, 파우스트가 반한 여인 그렌첸역에 원진아 배우 등 유명 배우를 보는 재미는 있었다. 극의 마지막에 박해수, 박은석 두 배우가 객석을 향해 걸어가며 퇴장하는 데 내 옆쪽 통로로 지나갔다. 잘 생긴 두 배우를 가까이에서 봤다는 것과 연극의 대사 중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다. 이 불완전함 가운데서도 조금씩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내가 사는 동안 해내야 할 과제가 아닐까.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괴테의 심오한 철학이 담긴 연극보다 남편이 내게 한 말 '이 불완전한 존재야'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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