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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08. 2023

가볍게 하이볼 한 잔 어때?


'아, 잘 잤다. 개운하다. 푹 잔 것 같다. 그런데 잠깐, 나 집에 어떻게 들어왔지? 옷도 안 갈아입고 씻지도 않고 잤네...'


오랜만에 옛 직장 동료였던 동생을 만났다. 오래 같이 일했고 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어 만나면 할 말이 참 많은 사이다. 기분이 좋다 보니 과음을 했다. 택시는 어떻게 탔는지, 집에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휴대폰을 보니 택시를 탄 뒤 잘 들어가라는 카톡까지 했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다.


전날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 양말을 식탁 아래 벗어둔 걸 보니 집에 들어와 식탁 의자에 앉았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그전에 멈췄어야 했는데... 후회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제 술을 끊어야겠다고.




나는 술이 좋다. 술을 마시면 다른 내가 되는 게 좋았다. 웃음이 나고 목소리가 커지고 걱정이 사라졌다. 낮동안 힘든 일이 있어도 밤에 술을 마시고 웃으며 흘려보냈다. 나중에서야 술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술은 이미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가 됐다. 가볍게 한 잔 하자, 라고들 말한다. 나는 가볍게 마시는 법을 잘 몰랐다. 맥주는 천천히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거고 소주는 빨리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거였다.


결혼 전에는 맥주 보다 소주를 주로 마셨다. 안주를 잘 안 먹는 편이었고 술 마신 다음 날은 오렌지주스나 커피우유로 해장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술을 마셔도 살이 찌지 않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독한 소주보다는 시원한 맥주가 좋았다. 맥주는 소주보다 많은 양이 들어갔고, 안주를 불렀고, 다음 날 속 쓰림을 핑계로 이것저것 먹게 만들어 내 배둘레에 핸들을 만들어줬다.


내가 요즘 밥, 빵, 면, 떡을 안 먹겠다고 결심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유지하지 못한 것, 탄수화물에 끝없이 빠져들었던 것, 그 원인은 술이라는 거다. 술을 많이 마시고 블랙아웃이 됐을 때, 술 때문에 식탐이 자제가 안된다고 느꼈을 때 술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수많은 다짐에도 내가 술을 끊지 못한 이유를 일주일 동안 밥, 빵, 면, 떡을 제외한 식사를 하면서 깨달았다. 내게 술을 끊는다는 건 평생 탄수화물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무리한 다짐이기 때문이다.


30년을 마셔온 술, 못 끊는다. 아니, 안 끊는다. 잠시 참을 수는 있겠지만 이미 내 일상에 큰 즐거움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술을 끊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끊어야 할 건 술 전부가 아니라 내 뱃살을 만든 주범, 맥주다. 지친 퇴근길, 특히 무더운 여름이면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 네 개를 사곤 했다. 시원하게 한 캔만 마시려고 시작해서 서너 캔은 기본으로 마셨다. 맥주와 함께 기름진 안주를 먹고 다음 날이면 속이 쓰리다며 또 열심히 먹었다. 특별히 맥주를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마셨던 건 아마도 티브이 광고 속 멋진 남자 배우들 탓인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날 유혹하고 있었던 그들과 이제 헤어져야겠다.


요즘에는 맥주를 대신해서 하이볼을 만들어 먹고 있다. 내가 여행 다녀오며 면세점에서 사 온 위스키와 남편이 출장 가서 사 온 위스키가 있다. 블로그에서 대충 하이볼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보고 내 취향에 맞게 만들었다. 위스키와 토닉워터를 1:5 비율로 넣고 얼그레이 시럽(다른 시럽이나 단맛 나는 청 종류 넣어도 괜찮고 단 게 싫으면 안 넣어도 됨)과 레몬즙, 그리고 얼음을 넣는다. 식사할 때 한 잔 혹은 밤에 아이들이 다 잠든 조용한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한 잔 마시면 피로가 싹 사라진다. 음주생활 30년 만에 가볍게 한 잔 마시는 법을 알게 됐다.


산토리 위스키는 그냥 먹으면 별로, 하이볼로 만들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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