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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16. 2024

화해를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지

19년 차 부부의 나름 슬기로운 부부싸움 (2화)


"엄마야? 어디 갔다 왔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막내딸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아빠랑 다투고 말없이 나간 엄마가 들어오지 않으니 불안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디 갔다 왔어?"


거실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있던 남편이 아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로 물었지만, 대꾸 없이 딸의 방으로 들어갔다.


결판을 낼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막상 남편의 얼굴을 보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의 말싸움은 언제나 내게 불리했다.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다 보면 나는 늘 감정이 앞서 버벅거리다 울고, 논리 정연한 남편은 자기 의견을 따박따박 말했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생각에 확신이 있는 사람, 나한테 공감보다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믿음이 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 부분이 가장 숨 막힌다. 그냥 공감만 해주면 되는데 자꾸만 조언을 하는 남편,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남편에게 비밀이 많아졌다.


남편과의 싸움에서 나는 침묵하는 편이 유리하다. 남편은 나의 침묵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엄마 오늘은 여기서 잘래."

막내딸 옆에 누웠다.


"엄마, 아까 아빠랑 왜 싸웠어?"


"싸운 거 아냐. 그냥 생각이 달라서 그래."


"엄마랑 아빠는 대화를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선생님이 생각이 다른 친구랑 싸우지 말고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하셨어."


아, 아홉 살짜리 딸 앞에서 싸운 게 너무너무 부끄럽다.


잠시 후에 딸은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고, 남편이 문을 빼꼼히 열고 말했다.


"나와봐"


"왜?"


"나와봐. 할 말 있어"


그럼 그렇지, 속으로 씩 웃었다.


"나 그냥 혼자 있고 싶어. 말 시키지 마."


"그럼 안방에 들어가서 편하게 누워있어. 난 거실에 있을게."


나는 못 이기는 척 쓱 일어섰다.


"엄마, 그냥 나랑 자자."


잠든 줄 알았던 딸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


"엄마 잠깐 나가서 아빠랑 얘기 좀 하고 올게. 눈만 감고 있어."


딸은 금방 잠들 것이다.


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 읽다가 처박아둔 책을 펼쳐 들었다. 한참 책을 읽고 있는데 남편이 슬며시 옆에 와서 눕더니 내 손을 잡았다.


"자기야, 미안해"


"뭐가?"


"그냥 다 내가 잘못했어. 자기야,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


남편은 이 상황에 도대체 왜, 그런 게 궁금한 걸까?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그래서 전생을 다시 살 수도 있다고 진짜 믿기라도 하는 걸까? 벌써 몇 번은 들은 질문이다.


"미쳤냐? 난 절대 결혼 안 할 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 스무 살에 결혼해서 애들 빨리 키우고 놀러 다니자."


"더 일찍 부려먹고 싶어서 그러냐? 니가 여자고 내가 남자면 한 번 생각해 보지."


안 그러고 싶은데 입가에 살짝 미소가 돈다. 어쩌면, 혼자 거리를 걸어 다니며 나는 이미 화를 풀었고, <미션 임파서블>을 혼자 보러 갈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벽을 보고 돌아누워 책으로 눈길을 돌렸으나, 이미 늦었다.


남편의 손이 살며시 내 등을 쓰다듬는다. 어깨를 쓰다듬던 손이 슬며시 앞으로 내려온다.


잡아먹을 듯 싸운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이렇다 할 화해도 안 했는데... 그런데 나는 이 손길을 뿌리칠 수가 없다. 남편이 내 몸을 돌려 키스를 하고 속삭인다.


"사랑해"


"응"


"자기는?"


"너 하는 거 봐서"


"방문 잠글게"


남편이 방문 앞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방문이 확 열린다.


"엄마~ 나 무서워. 같이 자자."


나는 네가 더 무섭다.




- 얼마 전에 마을 도서관에서 하는 강연(부부 심리, 대화법)을 들으러 갔었는데요. 부부싸움 뒤에 잘잘못을 가리며 대화를 하는 것보다 슬쩍 스킨십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인 화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어, 저거 딱 우리 얘긴데' 싶었지요. 예전에는 남편의 이런 태도가 불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




*제 글을 모아 결혼기념일마다 브런치북을 만들려고 합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만든 브런치북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edding-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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