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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ul 28. 2023

라면에 전복 넣어먹는 전 복이 많아요


"택배 왔다고 문자 왔어. 문밖에 나가 봐."

"뭔데?"

소소한 쇼핑을 즐기는 남편이 또 뭘 샀길래 저리 호들갑인가 싶었다. 문 앞에 하얀 스티로폼 박스가 놓여있다. 뭐지?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는 청정해역 땅끝 전복? 우와~~ 전복이다!!


"웬 전복이야?"

남편 지인의 고향이 해남 땅끝마을인데 부모님이 전복 양식업을 하신다고 한다. 상자를 열어보니 마트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크기의 전복이 무려 열두 마리나 들어있다. 초복날 시장에서 전복 여섯 마리를 사다가 버터구이를 했더니 두 딸이 또 먹고 싶다고, 언제 또 해줄 거냐고 아우성이었는데...

얘들아~ 오늘이 그날이다!


전복이 왔어요


해남 땅끝마을, 정말 먼 곳에서 온 이 녀석들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활력이 넘쳤다. 이제, 놈들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놈들은 마치 외계 생물체의 눈 같기도 한 징그러운 몸뚱이를 벌렸다 오므렸다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꽉 끌어안고 안 떨어지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전술을 펼치는 놈들을 힘겹게 떼어냈다. 지난번에 놈들의 껍질과 살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전복껍데기에 부상을 입었다. 어떻게 하면 쉽게 뗄 수 있는지 유대장님의 전술을 따르기로 했다. 끓는 물에 10초 정도 올렸다 꺼내라고 알려주신다. 그렇게 했더니 정말 쉽게 떨어졌다. 칫솔을 이용해서 박박 문지르고 내장과 이빨을 떼어내자 놈들은 모두 항복했다.


전복이 많아요


전복 한 마리를 잘게 썰어 미역과 함께 참기름에 볶아 찬밥과 낮에 먹고 남은 갈비탕 국물을 넣고 끓였다. 점심 홈쇼핑에서 파는 갈비탕을 먹었는데 갈비는 별로 없고 국물만 많다고 욕을 하면서 먹었다. 이렇게 쓰라고 국물이 많았나 보다. 전복 내장 몇 개를 가위로 잘게 잘라 넣었다. 전에는 전복 내장을 안 먹고 버렸는데 내장에 영양가가 많다는 걸 알고부터는 죽과 볶음밥에 넣어 먹는다.(단, 봄에는 내장에 독이 있다고 함)


죽이 끓는 동안 전복 여덟 마리에 칼집을 넣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전복을 앞뒤로 노릇하게 구웠다.

전복버터구이
전복미역죽


딸들이 전복버터구이를 먹으며 감탄을 한다.

"엄마, 정말 맛있어. 감동이야."

"천천히 먹어. 엄마는 두 개만 먹을 거니까 둘이 세 개씩 먹어."

요즘 초3 막내딸이 하도 잘 먹어서 중3 둘째가 못 먹을까 봐 수량을 정해줬다. 둘째는 초5부터 작년까지 무섭게 먹더니 이제는 다이어트한다고 많이 안 먹는다. 막내딸이 전복버터구이 세 개를 다 먹고 전복죽에 깍두기를 올려 두 그릇을 비웠다. 다행히(?) 아들은 전복을 안 먹는다. 그 아이는 조개류를 매우 싫어한다. 오늘 전복이 배달 올 것을 어찌 알았는지 다섯 시쯤 샌드위치를 먹고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겠다며 나갔다.


다음 날은 전복과 오징어, 어묵, 콩나물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라면을 주면 미안한데 이렇게 해주면 하나도 안 미안하다.

전복 라면


전복은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이다. 여름철 원기회복, 피로해소,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면서 살도 안 찌고 맛있기까지 하다. 전복요리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든 생각, 싱싱하고 맛있는 전복을 먹을 수 있는 전 복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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