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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1. 2023

우리 집이 물세권이 됐다


우리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걸리버여행기>를 테마로 꾸며진 대조어린이공원이 있다. 우리는 그곳을 '대공'이라 부른다. 학교 수업을 마친 딸이 집안으로 가방을 던지며 말했다.

"엄마, 나 대공에서 놀다 올게."

킥보드를 밀고 대공으로 간 딸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아, 대공 무슨 공사해. 포클레인 들어오고 막아놨어."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안내판을 보니 공원 전체 리모델링 공사와 함께 그곳에 물놀이터가 만들어진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다.


막내딸과 나는 저녁마다 공원 앞으로 산책을 다니며 '오늘은 배가 만들어졌네, 오늘은 미끄럼틀을 달았네, 오늘은 바닥에 색칠을 했네' 다른 그림 찾기 하듯 살피며 물놀이터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 뒤인 7월 24일에 공사가 마무리되고, 25일에 물놀이터를 개방했다. 지나가다 보니 그야말로 물난리가 났다. 좋아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위험하니 뛰지 말라고 확성기에 대고 제지하는 안전요원, 미끄럼틀 위 바구니와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폭포... 와, 워터파크가 따로 없구나!


일요일 오전에 공원으로 물놀이를 하러 갔다. 막내딸과 즐겁게 뛰어놀 작정으로 물에 젖어도 상관없을 복장으로 갔다. 그런데... 초등학생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단다. 어른은 초등 미만 아이의 보호자만 들어갈 수 있단다. 내 딸은 초등 미만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 아쉬웠다.


나무 그늘에 앉아 음악을 듣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딸이 노는 걸 지켜봤다. 처음에는 혼자 뻘쭘하던 딸이 친구 하나를 만나고 또 둘을 더 만나 신나게 논다. 미끄럼틀 꼭대기에 담긴 통에 물이 차면서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다가 어느 순간 아래쪽으로 폭포처럼 물이 쫘악 쏟아져 내릴 때는 나도 아이들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뭐, 이렇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네.



초3 막내딸과 첫째, 둘째는 여덟 살, 여섯 살 차이가 난다. 방학을 했지만 첫째는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없고, 둘째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바쁘다. 그리고 이 늙은 에미는 첫째, 둘째가 어릴 때처럼 바리바리 싸들고 사람 많은데 놀러 다닐 기운이 없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에 워터파크가 한적해지면 한번 놀러 갈까 싶었는데, 이렇게 집 근처에 물놀이터가 생기다니! 이건 아이들 뿐 아니라 나 같은 부모들을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이사를 계획했다가 현재 집과 원하는 집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커서 이사를 나중으로 미뤘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창문을 열면 숲이 보이는 숲세권이다. 옆집 창문 말고 하수구 냄새 말고 숲이 보이는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다. 이번에 우리 집이 물놀이터가 있는 물세권이 된 걸로 숲세권으로 이사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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