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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3. 2023

물놀이터에서 놀다가 성장판 손상이라니


방학을 맞은 초3 막내딸은 오전 아홉 시에 학교체육교실에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그리고 와서는 유튜브를 보며 낄낄거리다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 학교 돌봄 교실과 피아노학원을 갔다가 다섯 시쯤 집에 온다. 나는 오전에 집에서 낄낄거리며 보내는 두 시간이 매우 못마땅했다. 얼마 전 집 근처에 생긴 물놀이터에 가서 놀면 좋을 시간인데 말이다.

"열한 시에 물놀이터 가서 놀지 않을래?"

"혼자 놀기 싫은데."

"가면 친구 있겠지. 가보자."


딸을 데리고 간 물놀이터에는 유아들이 많았고 딸 또래의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다들 학원을 갔나 보다. 딸이 물놀이터를 몇 바퀴 돌다가 친구를 찾지 못하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지난 주말에 왔을 때 막아놔서 못 탔던 미끄럼틀을 한 번 타고 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딸이 미끄럼틀 앞에까지 갔다가 타지 않고 그냥 나왔다.

"왜 안 탔어?"

"그 앞에서 아기들이 놀고 있어서 그냥 내려왔어."

"비켜달라고 하고 타면 되지."


딸은 친구가 없어 놀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놀고 싶은데..."

"그럼 시쯤 놀 친구 있나 물어봐. 피아노학원 조금 일찍 가서 빨리 치고 나오면 되잖아."

"나 피아노 일찍 가는 거 싫은데... 그리고 피아노 오래 걸리는데."

"딴짓 안 하고 빨리 치면 되잖아."

"나 딴짓 안 해. 그리고 박자가 있는데 어떻게 빨리 쳐."

딸의 짜증에 나도 짜증이 났다.

"엄마는 네가 놀고 싶다길래 방법을 찾아주려는데 너는 왜 자꾸 안 된다고만 ? 그럼 못 노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끝까지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럼 오늘 돌봄 교실 쉬는 건 어때? 돌봄 교실 쉬고 중간 타임에 가서 놀면 되잖아."

"좋아."

딸이 같은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친구와 한시 삼삽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점심을 먹고 약속시간에 맞춰 물놀이터에 간 딸이 30분 만에 들어왔다.

"왜 벌써 왔어?"

"발목 다쳤어."

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가?"

"미끄럼틀에서 세게 내려와서..."

미끄럼틀 끝에서 발이 바닥에 닿을 때 살짝 삐끗했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일단 씻으라고 했다. 딸이 다리를 절룩이며 욕실로 들어갔다.


딸의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가 많이 부어올라 있고 만지니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병원을 가자니까 싫다던 딸이 한 시간쯤 뒤에 점점 더 아파오는지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걸을 수가 없다고 해서 업히라니까 부끄러워서 싫다고 한다. 딸을 킥보드에 태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끌고 갔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하니 발목뼈에 금이 가고 인대가 끊어졌다고 한다. 성장판 쪽이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제대로 안 붙으면 성장판 손상으로 양쪽 다리 길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어제까지는 물세권이라며 좋아했던 물놀이터가 하루새 이 노므 물놀이터가 됐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딸과 거북이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휴, 사실 난 아까 봤다. 아이들이 미끄럼틀에서 너무 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그때 아기들이 미끄럼틀을 막고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미끄럼틀을 타지 말라는 계시였는데, 기어이 그걸 타러 가서 발목을 다치고야 말았구나... 내가 등 떠밀어서 아이 발목을 부러뜨린 것 같은 죄책감에 한숨이 난다.


"엄마, 나 배고파."

밥 할 생각은 안 하고 한숨만 쉬고 있는 내게 딸이 정신 차리라고 말한다. 소고기를 굽고, 토마토 스파게티에 모차렐라 치즈를 잔뜩 올려 저녁을 차려주니 정말 잘 먹는다.

"와, 너 진짜 잘 먹는다."

"나 성장기라서 그래."

그래, 넘어져서 이빨 안 부러진 게 어디냐. 발목뼈는 금방 붙겠지.


나의 세 아이 중 첫째는 두 번의 발목 골절, 둘째는 발가락 골절을 한 번 겪었다. 첫째가 다쳤을 때는 막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난 막내를 등에 업고 첫째를 교실까지 등하교를 시켰다. 트램펄린 타다가 삐끗, 길에서 발을 헛디뎌 삐끗, 장난치다가 의자 바퀴에 차여서... 아직 약한 아이들의 뼈는 잘 다치고 또 쉽게 나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막내딸의 보험에 골절진단금이 있다는 거. 딸아, 우리 보험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으면서 긴긴 여름방학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자! 성장기에 성장판을 다친 딸을 간호하며 나도 함께 성장하는 여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날, 건강식으로 차려 준 밥을 다 남긴 딸이 한 시간 뒤에 배가 고프다고 해서 떡볶이를 만들어 대령했다. 물 달라고 나를 부른다. 잠시 후에 물을 엎질렀다고 나를 부른다. 하루에 두 시간 유튜브 보고 낄낄거리는 것도 못마땅했는데 하루 종일 그러고 있다... 하아... 나는 성장할 수 있을까? 그냥 성질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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