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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5. 2023

19세 이상 여자만 보세요


오늘(7월 28일 금요일) 일을 글로 쓸 생각에 입가에 미소부터 떠오른다. 평소 뮤지컬, 연극 공연을 즐기는 나는 꼭 보고 싶은 공연이 없어도 티켓 판매 사이트를 들여다보곤 한다. 타임세일이나 조기 예매를 이용해 매우 저렴한 금액으로 관람 가능한 공연 중에 보고 싶은 게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눈에 들어온 공연이 하나 있었으니, 제목이 The Man Alive <Choice>. 19세 이상 여자만 관람 가능한 쇼뮤지컬이었다. 도대체 어떤 공연이길래 19세 이상 여자만?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예매를 했다.


언니와 공연장이 있는 서울숲에 갔다. 홍콩 가정식 식당에서 딤섬과 부침 요리를 먹고 서울숲을 산책하며 커피를 마셨다. 산책길 옆으로 난 도랑에 발을 담그고 잠깐 앉아 있었는데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했다.


공연 시작 이십 분 전에 공연장에 들어갔다. 참 오랜만에 신분증 검사를 당했다. 그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토록 철저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는 이유를... 공연장 안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성인 여자들만 있었다. 어느 모임에서 함께 온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고, 중년층 보다는 40대 이하 젊은 층이 더 많았다. 간간이 외국인들도 보였다.


여덟 시에 공연이 시작되고 일곱 명의 배우들이 한 명씩 춤을 추며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젊고 잘생겼으며 배에 빨래판을 기본으로 두르고 있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마음껏 좋아해도 되는 건지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매우 야한 복장의 남자 배우 하나가 나온다. 옆쪽에 있던 관객들이 꺄악 소리를 지른다. 배우는 그 환호성을 즐기며 관객들 사이에서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야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상의를 탈의한 그들의 몸은 어느 예술 작품에 나오는 조각상 같았고... 관객들은 어느새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벌어지는 은 그냥 벌어지게 놔두고 자동으로 마주치는 손뼉도 그냥 치게 놔두고 감기 기운이 있어 목구멍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환호성도 그냥 내버려 두자. 배우들은 여러 가지 컨셉의 옷을 입거나 벗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간간이 농담을 건넸다. 70분 동안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공연 중에 가장 집중해서 봤고, 보는 내내 집생각이 한 번도 안 났음을 고백한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와서 잠들기 전에 생각해 보니 뭔가 머릿속이 상쾌한 느낌이 든다. 머리를 쉬고 온 느낌이랄까. 젊고 잘생긴, 조각처럼 만들어진 근육을 가진 남자들을 보며 즐기다 왔는데 왜 이런 느낌이? 나는 천박한 건가? 조금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난 미켈란젤로 조각상을 본 듯 멋진 예술작품 같은 그들의 몸에 감동하고 그게 힐링이 된 것뿐이라고. 


물론, 남편한테는 이런 공연을 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고 잦은 회식으로 동그란 당신의 뱃살, 늘 가족을 위해 애쓰는 당신의 몸이 내 눈엔 가장 멋있어요~♡ 물론, 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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