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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23. 2023

천 원짜리 바질 화분으로 만든 향기로운 집밥


막내딸이 발코니에 있던 빈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은 안 씻어도 화분에 물은 꼬박꼬박 줬다. 며칠 뒤에 싹이 났다. 딸에게 물었다.


"이거 뭐야?"


"몰라. 언니가 줬어."


우리는 둘째한테 무슨 씨앗이냐고 물을 생각은 안 하고 뭐가 될까 궁금해하고만 있었다.


"엄마, 태풍 온대. 화분 좀 들여놔 줘."


"그냥 발코니에 둬도 안 날아갈 거 같은데."


"안돼. 들여놔야 해."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돼 들여놓은 화분을 책상 옆에 두고 또 열심히 물을 준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 잎이 무성해졌을 때, 둘째한테 무슨 씨앗인지 물었다.


"어, 그거 바질이야."


그 말을 듣고 가까이 가서 향을 맡아보니 남편이 가끔 해주던 바질페스토 파스타에서 맡았던 향이 난다.


"넌 이 씨앗 어디서 났어?"


"응, 다잇소에서 천 원주고 사서 그냥 처박아 뒀던 거야."


아, 넌 사다사다 별 걸 다 사는구나.


바질인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따먹는 건데...


바질로 뭘 해 먹을 수 있는지를 검색했다. 가장 많이 나온 건 바질페스토였는데, 얼마 전에 시판 바질페스토를 사기도 했고 난 그런 소스류는 사 먹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던 중 바질토마토 김치를 발견했다.


레시피가 굉장히 쉽다. 고춧가루와 참치액 외에 몇 가지 재료를 넣으라고 되어 있지만 난 그것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난 평소에 '아하, 이런 느낌!' 하고 닫아 버리고는 생각나는 대로, 느낌대로 만들어 먹는 편이다. (그러다가 여러 번 망함)


토마토를 썰어 고춧가루와 참치액, 설탕 약간 그리고 바질을 썰어 넣고 무쳤다. 올리브오일을 살짝 뿌렸다.


맛을 보니 토마토와 고춧가루의 조합이 꽤 괜찮았다. 안 그래도 좋던 입맛이 더 살아났다.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곁들여 먹으면 좋을 것 같다.


바질토마토 김치


아이들 아침으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 때 삶은 계란, 양배추와 바질을 다져 넣었다.

계란, 양배추, 바질, 마요네즈 소스 샌드위치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스타, 고기 볶음 요리를 할 때마다 바질 잎을 따서 올리거나 몇 개 넣고 볶았다.

토마토파스타 위에 바질
소고기야채볶음에 바질


지난주에 중고등 아이들이 개학을 했고 오늘은 초등 막내딸까지 개학을 했다. 이제 아이들의 점심밥으로부터 해방이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으로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었다.


오늘부터 다시 다이어트해야지. 냉장고 속 채소와 계란, 실곤약을 넣고 만든 나를 위한 점심에 바질 잎을 따다 올린다. 먹기 전에 향을 맡으니 행복하다. 혼자 조용히 점심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위한 다이어트식 위에 바질


바질은 어디에 좋은 거지? 밥을 먹다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항염작용, 면역력 증진, 호흡기 건강, 소화기 건강, 스트레스 해소, 혈당 조절 등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더라도 적당히 먹는 게 좋겠지.


올여름은 막내딸이 발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 무더위에 지친 건지 갱년기가 온 건지 작은 일에도 버럭버럭 화가 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을 돌이켜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향긋한 바질향이다. 둘째 딸이 무심코 사온 천 원짜리 씨앗이 막내딸의 정성으로 무럭무럭 자라 보잘것없는 내 요리를 향기롭게 해 준 기억. 오랜 시간이 지나도 떠오를 것 같은 상쾌한 2023년 여름의 향기다.


하이볼에 빠진 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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