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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04. 2023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조승우, 안 봤으면 후회할 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세계 4대 뮤지컬이라고 알려진 작품이 있다.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이다.


이 4개의 작품 중 내가 실제 공연을 본 건 '캣츠'뿐이었다. 이십몇 년 전쯤, 나한테 호감이 있던 어떤 남자가 보여줬는데 지금은 그 뮤지컬의 줄거리도, 그걸 보여준 남자의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이 나는 건 캣츠의 대표 곡 'Memory'.  가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다.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은 극장에서 영화로 봤다. 미스 사이공은 할리우드 실제 공연 영상을 봤는데 이게 왜 4대 뮤지컬 중 하나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베트남 전쟁 중 돈 때문에 술집에 처음 나간 여자와 미군의 만남, 첫눈에 반한 사랑, 처절한 이별 이야기로 다소 진부한 스토리였다. 그나마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거기에 조연으로 나온 홍광호배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스 사이공은 굳이 실제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지만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은 공연장에서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몇 달 전에 오페라의 유령 공연 소식을 듣고 꼭 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으나 업무 때문에 30분 늦게 티켓 사이트에 들어가니 이미 매진이었다.


아쉬운 대로 예매대기 신청을 해놓고는 잊고 있었는데 취소표가 나왔다는 문자가 왔다. 돈 때문에 한숨 쉬던 때라 2층임에도 13만 원이나 하는 이 표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보기로 했다.


8월 25일 금요일 낮에 공연이 열리는 잠실 샤롯데시어터를 찾아갔다. 공연장 안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단체 관람을 온 것이다. 내가 뮤지컬을 처음 본 날이 생각나 빙그레 미소가 돌았다.


내가 처음 본 뮤지컬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단체관람 한 <맨오브라만차>였다. 내 눈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멋진 배우들을 보며, 특히 돈키호테 역의 남경주 배우가 부른  'Impossible dream'을 들으며 설렜다. 어쩌면 그때의 그 설렘이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공연을 몇 번 다니면서 느낀 게 있다. 1층에서 보는 것과 2,3층에서 보는 건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2층이상 올라가면 내가 실제 공연을 보는 건지 텔레비전 생중계를 보는 건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꼭 보고 싶은 공연인데 자리가 없는 경우라면 2층이상이라도 표를 사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음을 기약한다. 내가 낸 돈만큼의 감동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기를 쓰고 좋은 좌석을 사려고 하는지 알게 됐다.


오늘은 2층에서 공연을 봤지만 앞줄이 비어있어 시야에 막힘이 없었다. 멀어서 배우의 표정연기를 못 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극복하기 위해 오페라글라스를 준비해 왔다. 오페라글라스로 무대를 보니 배우들의 표정이 정말 또렷하게 잘 보였다. 그런데 가장 보고 싶었던 조승우 배우는 역할 때문에 얼굴에 흉측한 분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나와 실제 얼굴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이 공연에서 조승우 배우는 같은 역할로 캐스팅된 명의 배우들이 모두 성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이 느껴져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가 그런 부분을 극복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음이 느껴졌다. 목소리 톤 자체를 많이 바꿔서 '잉? 조승우 맞아?'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느낀 이 뮤지컬은 유령으로 나오는 조승우 배역보다 여주인공 크리스틴의 비중이 더 커 보였다. 크리스틴 역의 손지수배우는 연기와 노래, 외모 모든 게 배역에 잘 어울리며 흠잡을 곳이 없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움직이는 조각상, 나룻배 등 무대를 꽉 채운 화려한 장치들도 감동을 한층 더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크리스틴과 라울의 사랑, 라울이 목숨을 내놓고 지키고자 할 정도로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된 게 단지 어릴 때 함께 했던 추억이 있었다는 것 정도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운명인 거니, 사랑이 그렇게 단순해?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유령과 크리스틴이 서로의 영혼을 더 깊이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결말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저녁거리를 사들고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2023년 8월 25일 오후2시 샤롯데시어터 오페라의 유령 조승우


최근에 본 뮤지컬 중 나만의 4대 뮤지컬을 한번 꼽아보았다.

1) 빨래 - 눈물 쏙, 감동, 다시 보고 싶은 뮤지컬 1위

2)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 창작극이 이렇게 재밌다니, 흥이 폭발, 양희준배우의 발견

3) 오페라의 유령 - 배우들의 연기, 음악, 무대장치 모두 황홀했던 시간

4) 베토벤 - 박효신, 1층 앞쪽 좌석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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