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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11. 2023

박효신 팬미팅, 설렘과 아쉬움 사이


박효신 팬미팅 보름 전, 티켓이 집으로 배송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부천종합운동장으로 최근에 개통한 서해선을 타면 한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공연 열흘 전, 문자가 왔다. 뭔가 굉장히 길다. 긴 변명과 사과의 말... 아, 답답해. 결론이 뭐야? 공연 기획사의 잘못으로 원래 공연장인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을 못하게 됐다는 소리다. 그럼 취소냐? 그건 아니다. 장소가 올림픽공원 88 잔디마당으로 바뀌었단다.


아, 미쳐 버려. 웬 잔디마당?


티켓팅을 하기 전에 고민을 했다. 가수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스탠딩석, 몇 시간을 그 많은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서서 버틸 수 있을까? 체력에 자신이 없다. 스탠딩석 뒤쪽은 피크닉석으로 작은 돗자리 하나를 깔고 바닥에 앉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자리다. 이것도 스탠딩석처럼 입장 번호에 따라 줄을 서서 들어가는밤늦게 끝날 공연을 아침부터 가서 입장 줄을 설 자신이 없다.


나는 맨 뒤쪽이지만 지정석을 택했다. 기본적인 높이와 단차가 있는 관람석이기 때문에 앞쪽에 사람이 많아도 보는데 문제없을 것이고 굳이 일찍 가서 줄을 설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공연 열흘 전에 장소를 바꾼다니? 그것도 다른 체육관도 아니고 잔디마당 이라니? 잔디마당 뒤쪽에 앉아서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겠어? 그리고 올림픽 공원은 부천종합운동장 보다 집에서 더 멀단 말이야!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티켓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의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심각하게 고민이 됐다. 티켓을 환불받아야 하나. 인생은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김샌다.


9월 9일 박효신 팬미팅 티켓, 몇 초만에 매진이었다지.


공연 전날 다섯 시까지만 취소하면 된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취소하자 생각하다가 기분이 좋은 날은 그냥 가보자 하면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내 인생에 뭘 해서 후회한 것보다 안 해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았다는 거다. 가자, 뭐가 기다리든 박효신의 노래는 들을 수 있잖아.




9월 9일 밤 9시 30분, 박효신 팬미팅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서둘러 올림픽 공원역에서 5호선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설렘보다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오늘 팬미팅 시작 시간은 낮 2시였다. 나는 4시쯤 갔는데 박효신과 BTS 뷔, 스태프들이 나와 게임을 했다. 내 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데 햇볕이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박효신과 뷔가 줄다리기를 하든 말든 자리를 떠나 나무그늘을 찾아갔다. 게임에 이긴 팀한테 아이스크림 '설레임'을 나눠줬는데, 난 이긴 팀이 아니라서 설레임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내 설렘이 사라진 건가.


뒤이어 멜로망스와 다이내믹듀오의 공연이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늘을 찾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피자, 핫도그, 스테이크 등의 음식들과 맥주, 와인을 파는 곳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즐기고 싶은데 혼자라는 게 아쉬웠다. 물론 난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성격이긴 하지만 화장실이 먼 관계로 참았다. 팬미팅이 콘서트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팬들이 모이는 축제였다.


기다리던 박효신 공연은 7시에 시작됐다. 내 자리는 무대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대형 스크린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음향이 별로였다. 내가 기대한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몸 사리지 말고 스탠딩석을 예매해야 했다. 박효신이 스탠딩석 앞으로 내려가서 노래를 부르고 손을 부딪치며 지나간다. 마지막에는 무대로 올라와서 같이 놀자고 한다. 부러워 미치겠다. 긴 기다림에 비해 짧게 느껴졌던 두 시간 삼십 분의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많이 아쉬웠다.


반가웠어요 소울트리 그리고 대장


집에 들어가 씻고 바로 자고 싶었는데 남편이 맥주와 안주를 준비했다.

"좋았어?"

“좋긴 했는데 자기랑 이문세 콘서트 갔을 때만큼 신나지는 않았어.”

남편한테 이 말을 하고 나서 나는 그 이유를 곧바로 깨달았다. 추억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이문세 노래는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주는 힘이 있는 반면 박효신과 나 사이에는 아직 그런 게 부족했다.    


내가 박효신의 팬이 된 건 일 년 반 전이다. 최근에 그의 노래를 즐겨 듣기는 했지만 내게 추억이 있는 노래는 드라마 삽입곡으로 오랫동안 좋아했던 ‘눈의 꽃’과 처음 듣고 눈물이 났던 ‘굿바이’ 두 곡 정도다. 박효신은 오늘 그 두 곡을 부르지 않았다. (오늘 부른 'home'과 '연인'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지만) 어떤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열광할 때 단지 그가 노래를 잘하고 멋있어서가 아니라 그 노래로 인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박효신 팬미팅에 간 걸 후회하냐고? 내가 후회하는 건 단 하나, 스탠딩석을 사지 않은(못한) 거다. 다음번 콘서트에 간다면, 그때는 몸 사리지 말고 꼭 스탠딩석을 사서 신나게 놀아야겠다. 박효신과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효신님한테 받은 선물^^


<뮤지컬 베토벤을 두 번째 보고 와서>


웃는남자 박효신과 함께 한 완벽한 하루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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