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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13. 2023

대충 끓였는데 맛있어서 깜짝 놀란 제철 꽃게탕


오랜만에 시장에 가니 제철 맞은 꽃게가 많이 보였다. 1kg에 만 원인 꽃게를 2kg 조금 넘게 샀다.


집에 와서 꽃게 손질법을 검색했다. 살아 움직이는 게를 손질하기 어려우면 냉동실에 3~40분 넣어서 기절시킨 뒤 손질하란다. 꽃게를 냉동실에 1시간 정도 넣었다 꺼냈다.



기절한 것 같았는데 씻으려고 수돗물을 틀자 하나씩 깨어나 다리를 꿈틀거린다. 집게발 한쪽이 다 잘려 있어서 물릴 염려는 없었다. 버둥거리는 놈들을 하나씩 잡아 칫솔로 박박 문질렀다.


씻으면서 세보니 다섯 마리는 암게고 다섯 마리는 수게다. 봄에는 암게가 제철이고 가을에는 수게가 제철이라더니 수게가 더 싱싱하고 커 보인다.



세척을 마친 암게는 두 마리, 세 마리 나눠서 냉동실에 넣었다. 나중에 꽃게 라면 끓여 먹어야지.


오늘은 수게 다섯 마리로 꽃게탕을 끓일 생각이다. 꽃게탕 끓이는 법검색했다. 필요한 재료를 대충 훑어본다. 단호박을 넣으면 단맛이 더해져서 맛있다는 팁을 얻었다. 


, 파, 호박을 사 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검색창닫아버렸다. 레시피는 어차피 내 맘대로 끓일 거니까. 육수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시판 '고향의 맛'을 쓸 생각이다. 신선한 꽃게와 무, 고향의 맛 한 스푼의 조합이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받아 인덕션에 올렸다. 냉동실에 다시마가루와 표고버섯가루가 있어 한 스푼씩 넣었다. 된장과 고춧가루 두 스푼을 넣었다. 고향의 맛도 한 스푼 넣었다. 무를 썰어 넣고 게딱지를 넣었다. 무가 어느 정도 익을 때까지 한참을 끓였다.


"뭐야 이거 왜 이래?"

국물을 한 스푼 떠먹어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왜 벌써 맛있는 거야??"



게딱지를 건져내고 토막 낸 게를 넣었다. 단호박과 마늘, 파를 넣고 한소끔 끓였다. 국물을 한 스푼 떠먹는다. 캬아~ 그래, 이 맛이야. 국물이 끝내줘요!



가족 단톡방에 저녁 메뉴가 꽃게탕임을 알렸다. 와 맛있겠다 일찍 들어갈게,라는 답변을 기대했으나 남편은 약속이, 아들은 학원 보충 수업을, 둘째 딸은 절친과 떡볶이를 먹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막내딸(초3)과 둘이 저녁 식탁에 앉았다.

"맛있지?"

딸에게 살이 꽉 찬 꽃게 한 조각을 건네주고 물었다.

"간장게장이 좋아. 이건 먹기 힘들어."

투정 부리는 막내딸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다 참는다. 맛있는 거 앞에 두고 성질내면 안 되지.

"엄마가 게살 발라줄게."

게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려주니 국물과 무를 넣고 비벼서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일어선다.


혼자 식탁에 앉아 딸에게 살을 발라주고 남은 게다리를 씹는다. 게다리를 씹을 때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못생겨져서 앞에 아무도 없는 게 편하다. 단호박을 밥 대신 먹으려고 했는데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밥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이야~맛있다!"

시장에서 꽃게를 사 들고 올 때부터 듣고 싶었던 한 마디를 내 귀에 들려주고 설거지를 다. 꽃게탕을 주말에 끓일걸 그랬다고 후회를 했다.



밤 열 시가 넘어 책을 펼쳐 들고 방에 누워 졸고 있었다. 떡볶이로 저녁을 때우고 들어온 둘째 딸(중3)이 출출했는지 주방을 탐색하는 소리가 들린다.


와그작와그작 꽃게 씹는 소리가 들린다.

"으음~맛있어. 엄마, 꽃게 왜 이렇게 맛있어?"

꽃게 씹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와그작와그작.


꽃게 씹는 소리가 음악소리 보다 기분 좋게 들린다.

"밥이랑 같이 먹어."

"밥? 밥도 먹을까?"


밥통 여는 소리가 들린다.

"와, 엄마. 국물에 밥 말아먹으니까 정말 맛있다."

밥통 여는 소리가 한번 더 들린다.


오늘 꽃게탕을 끓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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