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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Sep 18. 2023

지하철 타다가 운동화를 빠트릴 뻔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막 올라타려고 발을 떼는 순간, 누군가 내 운동화 뒤축을 밟았다. 나는 앞으로 꼬꾸라질 듯 차 안으로 튕겨져 들어가며 '엄마~'를 외쳤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 벗겨진 운동화 한 짝을 찾는다. 운동화는 지하철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사이로 떨어질까, 이대로 지하철 문이 닫혀버릴까, 내 평생 가장 민첩한 깽깽이 동작으로 뛰어가 운동화를 줍는다.


휴, 다행이다.

운동화 한 짝을 발에 끼우면서 나에게 집중됐을 사람들의 시선에 민망함이 밀려들어 괜히 웃는다.


그런데 누가 내 뒤축을 밟은 거지? 나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나를 알 거 아냐. 그럼 신발을 주워주는 척이라던가, 최소한 옆에 서 있다가 사과의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뒤축 밟힌 사람이 깽깽이 발로 쇼를 하든 말든 빈자리 찾아가기 바빴단 말인가.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등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뒤에 뭐가 붙어 있는데 제가 떼 드려도 될까요?"

"네? 네..."

그녀가 내 옷에서 뗀 것은 막내딸이 만들기 한다며 날마다 사용하는 투명 테이프였다.


"감사합니다. 저 주세요. 이건 제가 버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내가 버려야 마땅한 투명테이프를 달라고 하자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 잠깐 스친 그녀의 친절에 오랫동안 기분이 좋았다.




지하철에 앉아 있었다. 내 양쪽 옆으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두 남자가 걸어왔다. 한 남자는 체격이 매우 컸고 한 남자는 말랐다. 두 남자가 빈자리로 다가왔다. 나는 체격이 큰 남자가 앉은 쪽이 불편할 거라 생각해 마른 남자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두 남자가 내 양옆에 앉았다. 어라? 내가 불편을 느낀 쪽은 예상과는 반대였다. 마른 남자 쪽이 어깨를 짓눌렀고 체격이 큰 남자 쪽은 오히려 편안했다. 살며시 옆을 본다. 마른 남자는 어깨를 쫙 벌리고 핸드폰을 쥐고 앉아 있고, 체격이 큰 남자는 자신의 체격을 의식한 듯 팔을 앞쪽으로 모으고 앉아있다.


그 남자의 배려심이 아름답게 느껴지며 상대적으로 너무 편안하게 앉아있는 마른 남자가 얄밉게 느껴졌다.


하루 중 잠깐 스쳐가는 인연들에도 이렇게 감정이 생기곤 한다. 나는 날마다 마주치는 인연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며 살고 있을까. 낯선 이의 등뒤에 붙은 테이프를 떼 주는 친절을 베풀고도 감사하다고 말할 만큼의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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