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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5. 2022

엄마가 처음이라서 미안해


엄마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또 시작된 아홉 살 막내딸의 질문이다.

"음... 엄마는 오빠 태어나기 전으로 가고 싶어."

"왜? 오빠 안 낳을라고?"

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더 잘해주고 싶어서 그러지~"


지금 고1인 첫째 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게 참 많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그랬다고 하기엔 미안하고 아쉬운 점이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두 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났을 때 준비도 안된 아이한테 기저귀를 뗄 것을 강요했다.

"너 이제 오빠 으니까 기저귀 그만 차야지. 왜 자꾸 실수를 하니?"

육아를 책으로 배웠다. 책에 쓰인 대로 월령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애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조바심이 났다. 예민한 아들이 밤에 푹 자지 못하고 한두 시간마다 깨서 나를 괴롭힐 때는 엄마가 아닌 괴물이 되어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들은 매우 느긋했고, 뭐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일이 잘 안 되었다. 문화센터 혹은 친구와의 약속에 나가야 하는데 아이가 하던 놀이를 멈추려 하지 않아 짜증이 났다. 내 눈에 그것은 해야 할 일 안 하고 딴짓하는 것으로 보여 아이를 심하게 다그치기도 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같은 반 모임에 끼지 못하면 외톨이가 될 것만 같았다. 그 당시에는 학부모들이 교실 청소를 했기에 엄마들과 친해지기 위해 매주 학교에 나갔다. 우리는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같은 유치원을 졸업한 친구들과 엄마들은 이미 많이 가까워 보였다. 항상 모임에 끼워주기는 했지만 나와 아들이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한 번은 모임에 다녀온 아들이 살짝 울먹울먹 하며 말했다.

"엄마, 저 모임에 가기 싫어요. 애들이 항상 저를 졸병 취급해요."

"돌아가면서 하는 거 아냐? 네가 싫으면 애들한테 싫다고 말하면 되잖아."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그 나이 때 남자아이들은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큰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암묵적으로 서열을 가린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친구 만들어 준다고 쫓아다닌 모임이 아이에게 오히려 독이 던 건가 자괴감이 들었다가, 어딜 가나 그런 일 있을 수 있는데 우리 아이가 너무 물러 터져서 당하는 거 아닌가 아이 탓을 하기도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 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으나, 그중 한 명의 아이와 악연이 계속되었다.

아들을 수영장에 보냈는데 수영장에, 하필 같은 클래스에 그 아이가 있었다. 겁이 많은 아들은 수영장 바닥에 발이 닿지 않자 무서워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는데 우리 아들의 소심한 성격을 아는 그 아이가 수영장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계속 얼굴에 물을 뿌리며 괴롭혔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웃으며 말했다.

"미안~우리 애가 좀 짓궂어서~"

한 달 만에 그 수영장을 그만두고 동네에 새로 생긴 어린이 전용 수영장에 보냈다.


학교 봉사단체에서 캠프를 가게 되어 1박 2일을 자고 온 적이 있는데 그 캠프에서, 또 그 아이와 하필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나이 많은 형들과 합세하여 아들을 포함한 약한 아이들을 조롱했고 폭력적인 언어에 민감했던 아들이 캠프에서 돌아와 울면서 말을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난 남편은 학교로 전화를 걸어 잘못한 아이들 전체에게 사과를 받았고, 다시 엮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중학교 입학 준비를 하기 위해 학원을 새로 등록했다. 우리 동네에는 정말 수많은 학원들이 있다. 한 반에 5~6명 수업하는 수학학원에 또 그 아이가 같은 반으로 들어왔다. 학원에 지각을 하고 숙제도 안 해가고 힘들어해서 물어보니 그 아이가 또 주변 애들과 합세하여 아들을 놀려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아들이 학원을 그만두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해해 줄 수도 있는 사람이 우리의 약한 부분을 파헤치려 할 때가 종종 있다. 아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그것을 알아버렸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시간이 많이 지나 생각해 보니 아들을 괴롭혔던 그 아이보다 더 나빴던 건 나였다. 아들이 당하고 다닌다는 것에 속상해했을 뿐, 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지 못했다.

"절대로 네 잘못이 아냐. 엄마는 항상 네 편이고, 언제나 널 사랑해."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그깟 악당 같은 아이들쯤 무시할 수 있었을 텐데...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그 상황들을 바꾸고 싶다기보다는 아이에게 더 여유 있고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다.




퇴근길, 아들 또래의 남녀 학생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번 더 돌아본다. 아이들 옷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우리 아들인 것만 같다. 나 모르는 곳에서 아들이 여자 친구와 손 잡고 다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지난 일에 대한 미안함은 넣어 두고, 오늘 할 수 있는 걸 하자. 핸드폰을 꺼내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랑해'

바로 답장이 왔다.

'네 저도요'

오늘도 내일이면 과거다. 오늘의 아들에게 따뜻한 엄마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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