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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15. 2022

사랑한다 말하기 어색하지만

우리는 가족입니다


속초에서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엄마의 일흔두 번째 생신을 맞아 삼 남매가 준비한 여행이었다. 나에게는 한 살 많은 언니와 네 살 젊은 남동생이 있다. 우리는 통장을 하나 만들어 매달 10만 원씩을 입금해 두었다가 다 같이 식사할 때나 여행 갈 때 사용하는데, 공짜로 먹고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매우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각자 집에서 출발해 속초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만났다. 점심을 먹고 바닷물에 잠깐 발만 담근 후 호텔 체크인을 했다. 남자들은 모두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는데, 동생만이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에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를 '큰니' 나를 '짠니'라고 부르던 애교 많던 동생은 어느새 돌아가신 아빠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언제나 지금 동생 정도의 젊은 나이이다.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도 아이들에게 다정한 동생의 모습에서 아빠가 보였다. 어릴 적  모습을 많이 닮은 막내딸과 아빠의 모습을 닮은 동생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앉아있자니, 마치 어린 날의 내가 아빠와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 행복했다.



엄마와 언니가 호텔 주변 청초호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내 옆에 앉았다. 엄마와 언니는 잘 안 맞는 듯하면서도 항상 붙어 다니는 사이이다. 엄마는 내가 전화를 잘 안 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는데, 언니가 사흘만 전화를 안 해도 왜 그렇게 연락이 없냐고 하신다고 한다. 언니는 항상 가족 전체를 챙기느라고 애쓴다. 어릴 때는 둘째라서 서러운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둘째라서 편하고 언니가 있어서 너무나 좋다.


나는 요즘 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엄마를 전혀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드는 내 얼굴에서 엄마가 보인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어느 순간 보니 엄마에게 들었던 말을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속초 가는 길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무려 11km에 달하는 인제 양양 터널을 지나게 된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은 마치 그 긴 터널을 지날 때처럼 언제 끝날지 모를 어둠 속을 달려서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은 닮아 가고 있었다.


나에게 가족이라는 건 어둡고 긴 터널을 함께 지나온(혹은 지나갈) 사람들, 앞으로 또 다른 터널을 혼자 지나야 하는 두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주는 영원한 나의 편이 있다는 든든함이다.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사랑해요 우리.
고마워요 모두.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
행복해야 해요.
-가족 (이승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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