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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8. 2023

보리차를 맥주처럼 마시는 아기


"맘마, 아~~"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입을 한껏 크게 벌리며 웃는다. 정작 이걸 먹어야 할 나은이는 나를 보고 웃기만 할 뿐 입을 벌리지 않는다. 숟가락을 입 주변으로 가져가니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은아,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먹어보자. 아~~~"

나은이가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이, 그러지 말고 아아앙~~~"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의 애교가 보기 민망했던지 나은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잽싸게 입안으로 노란 실리콘 숟가락 위에 놓인 이유식을 밀어 넣었다. '푸' 하고 이유식을 뱉어버리는 나은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려 한다. 너 이모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이노옴~ 그러면 안돼!"

"자 다시 아~~~"

나은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벌리지 않는다. '싫다는데 왜 자꾸 그래? 맛없다고!'라는 뜻인걸 알지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물 줄까? 자 물~ 아~~~."

보리차를 담은 파란색 컵을 집어 들고 물이라고 하자 나은이가 팔을 휘저으며 좋아한다. 숟가락으로 물을 떠서 입 주변으로 가져가니 입을 쩍쩍 벌리며 받아먹는다. 그리고는 마치 시원한 맥주라도 마신양 "캬아~~" 소리를 내는 나은이. 나는 이 와중에 나은이가 커서 나랑 같이 맥주 마시는 상상을 다. 가만있자. 네가 스무 살이 되면 나는 몇... 살인 거냐? 할머니라 부르지는 말아 다오. 나는 이모야, 이모!


"맘마, 아~~"

다시 이유식을 내밀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다무는 나은이.

"맘마 싫어? 그럼 우리 물 먹자. 물~~"

보리차가 든 파란색 물컵을 들자 나은이 입이 또 쩍 벌어졌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이유식 한 숟가락을 떠서 물 컵에 살짝 담갔다가 빼서 나은이 입에 넣었다. '어라~~ 이상한데?' 하는 표정이지만 이미 입안에 든 것이 목구멍 안으로 꿀꺽 넘어갔다. 다음에도 똑같이 이유식을 한 숟가락 떠서 물컵에 넣었다 빼며 "물~"하고 웃으며 나은이 입속으로 쏙 넣었다.


내 거짓말이 두세 번 반복되자 나은이가 눈치를 챈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엔 진짜 물을 나은이 입에 넣어줬다.

"나은아 이거 물이야 물~~"

"캬아~~~"

나은이가 보리차에 취하기 전에 얼른 이유식 안주를 입안으로 넣어주기를 반복하며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맥주 마시듯 보리차를 마시며 감탄사를 내뱉는 귀여운 나은이는 이유식을 잘 먹지 않으려 한다. 지난주에는 많이 먹이지 못했는데 이번 주에는 나은이가 물을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거의 다 먹였다. 사기치고 이렇게 뿌듯하긴 처음이다.


노랑꿈터에 일요일마다 아이들을 만나러 다닌 지 10개월이 지났다. 한동안 낯을 가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우리(언니와 나)가 들어가면 달려와서 반긴다. 아이들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22년 4월생이고 두 명은 8월 중순에 돌이 된다. 4월생 아이들이 돌이 됐을 때는 여기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려 자원봉사 활동이 중단됐었다. 담당 복지사님이 카톡으로 한 아이의 돌사진을 보내주셨다. 돌상 앞에 드레스를 입고 홀로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이 쓸쓸해 보여 눈물이 났다.


나은이는 태어나자마자 베이비박스에 버려져 이곳으로 왔다. 얼마 전까지 장난감 보다 손수건을 좋아해서 손수건만 보면 입에 물고 다녔다. 피부가 하얗고 통통한 게 뽀로로에 나오는 루피를 닮아서 별명이 루피공주다. 이제 곧 나은이도 첫 번째 생일을 맞는다. 나은이에게는 부모가 없는 쓸쓸한 돌사진이 남겠지만, 나은이가 어린이마을의 이모, 삼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 존재였는지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은이에게 점점 더 많은 이모, 삼촌들이 생겨나길, 좋은 부모를 만나 우리가 헤어질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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