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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pr 05. 2023

눈꽃을 보며 '오겡끼 데스까'를 외치다


- 코로나에 걸린 아이가 있으니 다시 연락드릴 때까지 나오지 마세요.

노랑꿈터 복지사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일요일 오전 시간이 갑자기 비었다. 오랜만에 시금치, 고사리나물, 냉이된장국, 연어구이를 만들어 아침밥을 차렸다. 밥 먹으라는 몇 번의 외침이 악으로 바뀔 때쯤 가족들이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잠이나 더 자게 놔두지 왜 안 하던 짓을 했냐는 듯 시큰둥한 표정들다. 남기면 다시는 밥을 안 해주겠다고 협박해 밥그릇을 비우게 하고 설거지를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나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자꾸만 시계로 눈이 갔다. 코로나에 걸린 아기는 괜찮을까, 지금 낮잠 잘 시간이네, 이유식 먹을 시간인데... 몸은 우리 집 거실에 앉아있지만 마음은 노랑꿈터로 향했다.


내가 봉사를 가는 방에는 아홉 명의 아기들이 있다. 여섯 명은 4월생이고, 세 명은 8월생이다. 4월생 중 가장 빠른 아이는 곧 뛰어다닐 듯 여기저기 탐색하며 돌아다니고 8월생 중 가장 느린 아이는 배밀이를 하려고 엎드려 버둥거린다. 각자의 속도로 열심히 자라나는 새싹들한테 누가 그런 나쁜 물을 뿌린 것인지 정말 속상하다.



아기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내 일기장 속 아기들의 모습을 찾아봤다.


<2022년 12월 25일 일요일>

어제 맥주를 마시다 늦게 자서 피곤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인데 집에서 쉴까, 잠깐 고민했다. 남편은 자고 있고 첫째와 둘째는 약속이 있어 나간다고 하고 막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말랑쁘니'에 빠져있다.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준다. 가자, 내가 필요한 곳으로!


신나는 동요를 틀어놓고 아기들과 댄스파티를 했다. 엎드려 기던 도윤이는 엉덩이를 들썩이고, 앉아있던 시온이는 팔을 휘저었다. 지안이의 손을 잡고 세워주자 다리를 들썩이며 활짝 웃는다. 이건 아이들이 내게 건넨 크리스마스 선물, 오늘 나는 귀여운 산타클로스를 만났다.


<2023년 1월 1일 일요일>

새해 첫날, 아래층에 있던 8월생 아기들 세 명이 슬기반으로 왔다. 오늘 처음 만난 나은이를 품에 안고 분유를 먹일 때 내 손가락을 꼭 쥔 작은 손이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뻔했다.


오늘따라 아기들이 많이 웃는다. 항상 잘 웃는 도윤이 오른쪽 볼에 살짝 보조개가 들어가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요즘 낯을 가려 나를 외면하던 푸름이가 시간이 한참 지나자 나를 보고 웃었다. 문이 달린 장난감 집을 사이에 두고 까꿍놀이를 하며 한참을 까르르까르르 웃었다. 새해 첫날을 이렇게 웃으면서 시작할 수 있다니, 복이 넝쿨째 굴러온 게 이런 기분일까.


<2023년 3월 19일 일요일>

지난달에 푸름이가 입양 가정으로 떠났다. 입양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부모와 아이가 연결되면 일정 시간 동안 만남을 갖다가 부모가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오늘 지훈이의 새로운 가족이 될 분들이 찾아왔다. 선생님들이 지훈이에게 가장 멋진 옷을 골라 입히고 창문밖 주차장을 보며 어느 차가 그들의 차일까 기다렸다. 그 가족에게 지훈이를 데려다주러 가는 선생님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보고 나도 코끝이 찡해졌다. 여기 있는 모든 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 떠나기를 바라면서도 이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일요일마다 아기들을 보러 가는 것에 대해 '봉사'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게 일요일 오전은 가장 게으르고 의미 없이 보내던 시간이었다. 아기들을 만나면서 이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밝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아기들을 돌보는 게 아니고 아기들이 나랑 놀아주는 거다.




2주째 노랑꿈터에 가지 못했다. 산책길을 걷는데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려 눈처럼 떨어졌다. 겨우내 방 안에서 생활하느라 눈 내리는 걸 보지 못한 아기들이 생각났다. 눈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문득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명장면 떠올라 나도 한 번 외쳐본다. 

"오겡끼 데스까~~(잘 지내고 있니?)"

꽃이 지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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