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숨겨진 조카가 있다. 돌이 채 안된 아기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여섯 명이다. 매주 일요일 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나는 조카들을 만나러 간다. 조카들의 부모는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버렸거나 학대 혹은 어떤 사정으로 양육을 포기했다.조카들이 사는 곳은 노랑꿈터이다.
10월부터 이 아기들을 만나기 시작해 벌써 석 달이 다 돼 간다. 일주일에 두 시간뿐이었지만 안아주고, 분유 먹이고, 똥기저귀도 갈아줬으니 이제 이모 자격이 좀 생기지 않았을까?
우리 반은 얼마전까지 일곱 명이었는데, 입양부모가 데려갈 날을 기다리고 있던 유라가 떠나고 여섯 명이 남았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가끔씩 유라가 밝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좋은 부모님 만났으니 더 많이 웃고 행복하게 지내렴.
-얘들아, 이모 왔어~
몇 주 전에 노랑꿈터에 가니 세 명의 아기들이 머리에 헬맷을 쓰고 있었다.
-이건 뭐야? 니들 파워레인저 같다.
아기들을 처음 봤을 때 유난히 뒤통수가 납작하거나 양쪽 옆으로 많이 튀어나오고 비대칭인 아기들이 있었는데, 머리모양을 교정해주는 헬맷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와~요즘엔 이런 것도 있나 보네요. 처음 봐요. 이거 얼마동안 써야 하는 거예요?
-최소 36개월 이상 써야 해요. 두 시간마다 잠깐씩 벗는데 잘 때도 쓰고 자요.
이틀 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된 아기들이 계속 짜증스럽게 울어댔다.
-아기들도 힘들겠지만 선생님들도 힘드시겠어요.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예요?
-적응시켜야죠. 얘들은 아무도 없는데 외모라도 예뻐야지요.
맞다. 아기들은 열여덟 살이 넘으면 여길 떠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 아무도 없다.
-얘들아, 이모 왔어~
그다음 주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웬일로 방안이 고요하다. 아기들이 자고 있었다.
-웬일로 다 같이 낮잠을 자네요?
-어젯밤에 잠을 못 잤대요. 다들 감기에 걸려서 기침하느라 못 자서 그냥 불 켜고 놀았대요.
단체생활을 하는 아기들이라 감기에 자주 걸릴 수밖에 없다. 이제 헬맷에는 약간 적응이 돼가고 있는 것 같은데 감기가 또 아기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평소 그렇게 활발하던 진아는 코가 많이 막히고 목이 아픈지 분유를 먹이려고 하면 짜증을 내며 울었다.
푸름이가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방긋방긋 웃으며 기어와 안기던 푸름이가 선생님만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뒤집을랑 말랑 하던 도윤이는 이제 뒤집고 엉덩이를 들썩인다. 앞으로 잘 나아가지는 않고 엉덩이를 들고 춤을 춘다. 지안이는 뒤집기는 안 하고 자꾸 세워달라고 한다. 겨드랑이를 잡고 세워주면 다리를 들썩이며 신나 한다. 나도 신나서 웃는다. 석 달 새 많이들 자랐다.
지안이와 헝겊책을 들고 놀았다. 까꿍놀이 책이었다.
-누굴까? 까~꿍~ 엄마야
그래, 여기 선생님들이 엄마니까.
-누굴까? 까~꿍~ 아... 빠... 야...
아빠는? 이 아이들은 아빠라는 존재를 언제쯤 알게 될까?
살며시 책을 덮었다...
잠시 후 졸음이 와 보채는 지안이를 안고 방을 서성이다 창밖을 내다봤다. 창문 밖 길건너에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 단지가 있다. 저 단지 안에도 아기들이 많겠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같은 학교에서 만난다면 아이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나라면 내 딸에게 부모 없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안이의 엄마는 미혼모라고 한다. 처음에는 지안이를 보러 오고, 외박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 모든 곳에 신이 갈 수 없기에 엄마를 보냈다는데, 엄마에게 조차 잊혀 가는 이 아이들에게는무엇을 보내주시려는지 묻고 싶다.
신이시여.. 우리, 여기 있어요. 신도, 엄마도 보내줄 수 없다면 멋진 외모, 탁월한 재능, 뛰어난 머리... 뭐라도 하나는 꼭~~ 주셔야 해요!바쁘셔도 여기 이 아이들 잊으시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