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Oct 26. 2022

선물 나눠드려요~


나는 매주 일요일 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선물이 쏟아지는 방으로 간다. 내가 받는 선물은 고층 아파트, 스포츠카, 명품가방... 과 맞먹는 가치의 것들이다. 그 선물은 웃음, 감사, 평화, 행복 등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그 선물을 받는 방법은 그냥 그 시간에 그 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 방 이름은 '슬기반'이다.


나는 10월 초부터 노랑꿈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봉사하는 방에는 갓난아기부터 돌 미만의 아기들 열명 정도가 함께 지내고 있다. 4~6개월 아기들이 가장 많고 지난주에는 태어난 지 열흘 된 아기도 새로 들어왔다. 태어난 지 열흘밖에 안 된 아기는 얼굴이 내 손바닥만 하고 전체 몸길이가 내 팔보다 짧다. 안으면 부서질까 겁이 날만큼 작은 생명이다. 아기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이 아닌 곳, 베이비박스에서 여기로 보내진다.

베이비박스는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로 한국에서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가 2009년에 최초로 만들었다. (현재 전국에 총 4곳) 처음 목적은 아기가 교회 밖에 놓아져 추운 날씨에 동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기를 넣은 후 벨을 누르면 보호 담당자가 즉시 달려와 아기를 보살필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곳에 버려진 아기는 2~3일간 응급처치와 보호를 받은 후 관할 구청의 확인, 건강진단 등을 거쳐 일시보호시설에 보내진다. 추후 입양이나 시설입소,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게 된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도 치열하다. 찬성론자들은 신생아의 생명권 보장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베이비 박스가 화장실, 쓰레기통, 지하철 사물함 등에 함부로 버려져 결국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하는 유기 아동들을 각종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며,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론자들은 베이비 박스가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출처 :다음 백과, 나무 위키 )


이곳에는 여자 아기들보다 남자 아기들이 더 많다. 아기들은 대부분 양부모를 만나 입양을 가게 되는데 입양 부모들이 남아보다는 여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부모가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써 놓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입양 가정으로 보내진다.


한창 열심히 기어 다니며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굴리고 다니는, 낮잠도 잠깐 자고는 금세 말똥말똥해지는 6개월 진아는 베이비박스에서 발견 당시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경우 6세까지는 입양을 보내지 않고 기다린다고 한다.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유라는 입양부모가 정해져서 지금 적응 중이라고 한다. 정해진 날짜에 입양 예정 부모가 와서 아이를 보고 가는데 곧 데리고 간다고 한다.


이곳에는 한 번에 많이 먹지 않고 계속 보채는 4개월 지훈이, 너무 많이 먹으려 해 걱정인 눈빛이 또렷한 2개월 지현이, 혼자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장난감을 물고 빠는 5개월 푸름이, 이제 막 뒤집기를 시도하는 지우도 있다.


나는 아기들 기저귀 갈아주기, 분유 먹이기, 울고 보챌 때  안아주기, 마사지해주기 등등의 일을 하지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아기들 얼굴을 보며 웃어주기이다. 누워서 모빌을 보며 놀고 있는 지우에게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주먹으로 내 손가락을 꽉 잡는데 손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난 그 손을 흔들며 우리 딸들이 들으면 가증스럽다고 할 귀여운 목소리로 '아고 이뻐라, 힘도 세네' 하면서 웃어주었다. 사실 웃어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온다. 지우가 이가 하나도 없는 맑은 입안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내게 웃음과 행복 선물이 쏟아졌다.


아기들을 안고 있으면 포근하고 편안해진다. 졸린데 잠을 못 자고 칭얼거리는 푸름이를 아기띠로 안고 밖으로 나와 단풍잎과 국화꽃을 보여 주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신기한 듯 쳐다보던 푸름이의 눈이 20분쯤 지나자 스르르 감겼다. 내 품에 안겨 잠든 푸름이의 예쁜 속눈썹을 보는 내게 사랑과 평화 선물이 쏟아졌다.


잠든 아기를 보면서 아기를 버린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버렸다'라고 했다가 지우고 '맡겼다'라고 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버렸다는 표현은 아기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맡겼다는 표현은 엄마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를 받기 힘든 상황에서 여러 기관들은 쉽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 변기나 쓰레기통에 아기를 유기하지 않고, 데리고 힘들게 살면서 학대하지 않고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은 부모는 아기를 지켜주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 하지만 다시 데려갈 것이 아니라면 버린 게 맞다.


마음속 한편에서는 알량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 사연이 내 사연이 아니라서 다행이고 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는 나는 축복받은 것 같다는 마음이다. 내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내 몸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짜증 냈던 시간들이 많았다. 시간은 너무 빨리 가고 나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감사 선물이 쏟아진다.


두 시간 동안 쏟아진 선물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늘 애쓰는 남편과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라고 있는 세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마음에 가득한 사랑과 웃음을 가족들과 나누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더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내가 받은 선물을 여기저기 나눠주고 싶다.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87


https://www.vms.or.kr/

https://www.1365.go.kr/


* 글에 나온 아기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