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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11. 2022

집으로

매달 15일, 기도해 줄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퇴근길 전철역 입구에 파란색 조끼를 입은 유니세프 홍보 청년들이 몇 명 나와 있다. 나는 전철 시간에 딱 맞춰 나오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거절하고는 했다.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려 조금 여유 있게 나왔다. 이렇게 궂은날도 애쓰고 있는 모습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스티커 하나 붙여주시겠어요?"

"네"

"만약에 전쟁이 나서 대피해야 한다면 어떤 물건을 가장 먼저 챙기실지 선택해 주세요."

의류, 여권 등 신분증, 물과 식량, 돈/재물.

네 가지 항목이었고 물과 식량에 가장 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여권 등 신분증에 스티커를 붙였다.

"왜 여기 붙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혹시라도 가족이 헤어지거나 할 경우 신분 확인으로 찾아야 할 것 같아서요."

"네 맞아요. 많은 분들이 물과 식량을 챙기신다고 하시는데 대피 장소로 가게 되면 신분 확인이 우선입니다. 신분이 확인되면 식량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에 신분증을 가장 먼저 챙기셔야 합니다."

"아~그렇군요."


그리고는 나에게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분쟁 지역 아이들의 사진이었다.

"이 아이들의 사망원인 1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질병? 상해?"

"안타깝게도 사람에 의한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집을 떠나 바깥 생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성범죄나 인신매매에 많이 노출이 됩니다."

충격이었다. 보호해 줘야 할 어른들이 아이들을 헤치다니...

"지금 아이들을 위한 조립식 집을 짓고 있어요. 아이들이 살 집에 문고리 하나 달 수 있게 조금 도와주세요"

"... 죄송해요. 제가 지금 전철을 타러 가야 돼서요. 다음에 후원 신청 꼭 할게요."

승강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꼭 해주세요. 약속하셨어요~"

"네~"



다음 날 생각해 보니 전철에서 청년들과 다시 마주쳐도 난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타러 가기 바쁠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정기후원 신청을 했다. 지난번에 굿네이버스 정기후원 요청 전화를 받고 망설이다가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때는 연락이 안 와서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후원해야 하나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으면서 마음이 무거웠었다. 이제 좀 가벼워졌다.


전철에서 스티커 붙여달라는 파란 조끼 입은 청년들이 봉사자가 아니라 아르바이트생 이라는 블로그 글을 보고 약간의 배신감이 들기는 했지만, 후원금을 내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것보다 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의 월급이 더 많이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내가 내는 돈에서 단 100원이라도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후원을 하는 게 맞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집으로 가기 위해 5시 22분에 출발하는 전철을 탔다. 여느 때 같으면 아직 환할 시간인데,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밖은 어둑어둑하다 못해 깜깜했다. 전철문이 고장 났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출발을 하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순간 밀려든 불안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아침에 출근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다.

'아이들은 다 돌아와 있나?'

집안 CCTV를 통해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전철이 출발하기 시작하자 마음이 놓였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붓는 빗줄기 속을 뚫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따뜻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포근한 잠자리에 든 감사한 오늘 밤, 

오늘만은 내 아이들이 아닌 기도해 줄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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