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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27. 2023

쓸데없는 짓하다 발견한 노란 고무줄의 쓸모


"손들어!"

그녀가 내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 말했다.

"사... 살려주세요."

"당장 사리곰탕면을 끓이지 않으면 쏘겠다!"

"밤 열 시에 라면이라뇨! 절대 안 됩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럼 하는 수 없지."

"탕-"

"으악"

요즘 초3 지윤이와 나는 이렇게 논다.


며칠 전에 지윤이가 학교 돌봄 교실에서 고무줄 총을 하나 만들어 왔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나무 조각 몇 개를 끼워 맞춰 만든 총 모양 비슷한 것으로, 자꾸만 틀어지고 부서졌다. 몇 번을 새로 조립하다 보니 연결 부분이 헐거워졌는지 고정이 잘 되지 않았다. 혼자 낑낑대던 지윤이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나 이것 좀 여기다 끼워줘."

잘 끼워지지 않아 힘을 주다가 작은 조각 하나가 어디론가 쏙 날아가 버렸다.

"앗, 어떡하지? 없어졌어."

"아~~ 앙. 어쩔 거야? 엄마 때문에 망가졌잖아."

"야, 이거 원래 망가져 있던 거야."

"몰라, 아~~~ 앙~~~."

아니, 왜 쓸데없이 이런 건 만들어 와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던 지윤이가 잠시 후에 웃으면서 나왔다. 그리고 남편한테 카톡이 왔다.

- 쿠빵주문했어. 자기가 망가트렸다며?

- 아냐, 나 억울해. 그거 원래 망가졌던 거라고.

- 2만 원짜리 하나 주문했어.

- 하, 그거 정말 허접한 거였어. 고무줄 총을 뭘 2만 원이나 주고 사줘?


다음날 고무줄 총이 배달됐다. 지윤이가 책상에 앉아 내용물을 꺼냈는데 조립이 매우 복잡해 보였다.

"아빠 오면 같이 하지 그래?"

"아냐. 나 혼자 할 수 있어."

혼자 낑낑거리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울음을 터트린다.

"울지 말고 잘 보고 천천히 해 봐."

"아니, 하라는 대로 하는데 잘 안된다고. 설명서도 영어야~!"

"그럼 그만하고 아빠 오면 해."

"싫어. 나 이 부분만 좀 해줘."

설명서를 들여다봤다. 나는 원래 그런 조립 설명서를 보는데 젬병이다. 영어인 걸 떠나서 그림을 봐도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

"미안, 엄마도 모르겠어.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자."

지윤이가 책상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고 있다. 남편은 쓸데없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 사줘 가지고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들어와 지윤이와 함께, 아니 거의 남편 혼자 총을 완성했다. 혹시 남편이 만들고 싶어서 산 건 아닐까?


꽤나 멋진 총이 완성됐다


지윤이가 열심히 고무줄 총을 쏘고 다니는 바람에 노란색 고무줄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나는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허리를 숙여 고무줄을 하나하나 줍다가 신경질이 났다. 여자애가 왜 쓸데없이 총을 좋아하냔 말이다.

"지윤이, 너! 고무줄 총 쏘고 나면 고무줄 바로바로 주워. 너 지금 학습지는 다 풀고 그러고 있는 거야?"

피아노 연주, 독서, 학습지 풀기 같은 쓸모 있는 짓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어젯밤에 설거지를 하는데 지윤이가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내 등에 고무줄 총을 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고무줄을 주워 싱크대 문에 걸린 수건걸이에 길게 끼웠다.

"엄마, 여기다 고무줄 끼우니까 수건이 안 흘러내려."

"앗, 그러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대?"

"히히."

지윤이가 씩 웃고는 사라졌다.


설거지 후 손 닦는 수건을 노란 고무줄로 고정시켜 줌


싱크대 문에 걸어둔 수건이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게 불편했는데 이제 단단히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다. 쓸데없는 짓의 반복이 결국, 대단한 쓸모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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