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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Dec 13. 2023

남편이 설거지를? 뭔가 수상하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오전 열한 시쯤 들어온 고2 첫째가 생명과학에서 한 문제를 틀렸다며 기뻐했다. 뭔가 특별히 맛있는 점심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냉장고를 살펴보니, 친정 엄마가 서해에서 사 왔다고 싸 준 크고 통통한 새우가 몇 마리 있었다. 가족 모두 먹기에는 적은 양이었다.

"이거 너만 특별히 구워주는 거야. 동생들한테는 비밀이다."

"네. 맛있어요."

우리는 새우를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는 둘째가 곱창볶음을 먹고 싶다고 해서 집 근처에 곱창볶음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여섯 시쯤 나가려고 하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나 지금 들어가는 중이야."

"어딜 들어가?"

"집"

"이 시간에 웬일이야?"

저녁 약속이 있으면 연락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다 하다 이제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막상 일찍 들어온다니까 어디가 아픈가,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냥 피곤해서"

"우리 곱창볶음 먹으러 나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집에 밥 없어? 대충 먹고 쉬고 싶은데."

"밥 있어. 식탁에 반찬 꺼내놓고 나갈게. 밥만 퍼서 먹어."

어제 장을 봐서 만들어 둔 반찬이 많았다. 오리고기, 쌈채소, 김치찜과 애호박볶음을 식탁 위에 꺼내놓고 집을 나섰다.


우리는 매콤한 야채곱창볶음과 담백한 막창구이를 2인분씩 시켜 먹었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볶음밥을 안 먹고 가면 너무나 섭섭하기에 '사장님, 날치알 볶음밥 하나 주세요~'를 외쳤다. 딱 한 숟가락만 먹으려고 했는데, 철판에 눌어붙은 밥알까지 싹싹 긁어먹고 일어섰다.


야채곱창볶음과 막창구이, 또 먹고 싶다.


집에 들어가니 피곤하다던 남편이 눈을 반짝이며 게임을 하고 앉아 있다.

"밥 먹었어? 애호박볶음은 열어보지도 않았네. 쌈채소도 안 먹고. 내가 편식하지 말랬지?"

"미안."

"반찬통 냉장고에 넣으라니까 넣지도 않고 말이야."

"미안, 그래도 설거지는 했어."

"아이고, 웬일이래?"

설거지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아한데, 하물며 밥 먹고 바로 설거지를 했다고? 그렇게 깔끔한 양반이 아닌데... 별일일세.


뭔가 수상한 느낌은 들었지만, 시키지도 않은 설거지를 왜 했냐고 추궁을 할 수는 없었다.


식탁 위에 반찬통을 정리하고 휴지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여는 순간, 그 별일이 왜 일어났는지 감이 팍 왔다.

그럼 그렇지! 쓰레기통 안에는 라면 봉지 하나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라면 먹었네. 그거 안 들키려고 설거지도 했고?"

"앗, 어떻게 알았지?"

"완전 범죄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 라면 봉지는 재활용에 넣어라."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합시다!


우리 집 쓰레기 통 안에는 남편이 버린 라면 봉지 외에도 감기 걸린 둘째가 코 풀고 버린 휴지와 약 봉투, 내가 마트에서 장을 본 영수증, 막내가 오리고 붙여 뭔가를 만들다 버려진 조각들이 담겨있다.


첫째랑 둘이 점심에 먹은 새우 껍질은 아무도 못 보게 깊숙이 꼭꼭 숨겨 넣었다. 남편아, 완전 범죄를 꿈꾼다면 이 정도 성의는 있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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