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내일 저녁에 처갓집 가서 파티하고 자고 오자!"
2023년이 저물어 가는 30일 저녁, 남편이 갑자기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갑자기 가면 엄마 힘들 텐데."
"내가 다 준비할게. 형님(나의 형부)한테도 물어봐야겠다."
평소 친정을 가자고 하면 바쁘다고 핑계대기 바빴던 남편이었다. 하루 종일 뒹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처갓집에 가자고, 자기가 다 준비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곧바로 형부한테도 '형님, 내일 처갓집에서 소주나 한 잔 하시죠'라며 문자를 보냈다.
"형부한테 벌써 얘기하면 어떻게 해? 엄마한테 먼저 물어봐야지."
전에 없이 재빠른 남편의 행동에 의아한 마음을 품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박서방이 내일 거기서 파티하자는데. 먹을 거 다 사갈 거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되고."
"엄마야 좋지."
엄마도 심심하던 참에 잘됐다고 좋아하셨다.
31일 오후에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정육식당에 들러 육회를 포장하고, 족발 맛집에서 족발을 포장하고, 친정 근처에서 회를 포장했다. 남편이 엊그제 보너스를 받았다면서 내 통장으로 돈을 입금했는데, 혹시 더 받은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냥 속아주기로 했다.
쓸쓸하게 보냈던 연말에 우리 가족과 언니네 가족이 모여 집안이 북적거리니 엄마가 좋아하셨다. 엄마가 좋아하시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자기야, 오늘 정말 기분 좋다. 파티하자고 한 거 아주 칭찬해."
포장해 간 음식만으로 부족해 치킨을 주문했다. 남편이 매운탕을 끓인다고 하자 엄마가 못 미더운지 남편을 밀어내고 직접 하려고 했다. 엄마한테 살짝 다가가서 말했다.
"엄마, 그냥 앉아있어. 오늘은 박서방이 다 하기로 했어."
"그래? 그럼 사위가 끓여주는 매운탕 좀 먹어볼까?"
남편이 끓인 매운탕이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가족들은 둘째가 가지고 간 보드게임을 하고, 난 엄마랑 맨 정신으로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조금 한 기억이 난다.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와인, 소주, 맥주를 섞어 마시고는 취해서 주절주절 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미역국과 잡채, 불고기를 만들어 아침을 차려주셨다. 작년에 엄마 생일상을 차려드려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하지 못했는데,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다음 날이 내 생일)을 받으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는 꼭 엄마 생일상을 차려 드려야겠다.
"생일 축하해."
"저 낳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덕분에 즐거웠어. 어떻게 처갓집에서 파티할 생각을 다 했대?"
"나 쫌 잘했지?"
"응. 잘했어."
"오늘 장모님이 미역국 끓여줬으니까, 난 내일 안 끓여도 되지?"
엄마가 차려준 내 생일상에 남편이 쓱- 숟가락을 얹었다.
"뭐야? 다 계획이 있었던 거야?"
내 생일 아침에 남편은 미역국을 끓이는 대신 편안하게 늦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