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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08. 2024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에 숟가락 얹은 남편

"자기야, 내일 저녁에 처갓집 가서 파티하고 자고 오자!"

2023년이 저물어 가는 30일 저녁, 남편이 갑자기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갑자기 가면 엄마 힘들 텐데."

"내가 다 준비할게. 형님(나의 형부)한테도 물어봐야겠다."


평소 친정을 가자고 하면 바쁘다고 핑계대기 바빴던 남편이었다. 하루 종일 뒹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처갓집에 가자고, 자기가 다 준비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곧바로 형부한테도 '형님, 내일 처갓집에서 소주나 한 잔 하시죠'라며 문자를 보냈다.


"형부한테 벌써 얘기하면 어떻게 해? 엄마한테 먼저 물어봐야지."


전에 없이 재빠른 남편의 행동에 의아한 마음을 품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박서방이 내일 거기서 파티하자는데. 먹을 거 다 사갈 거니까 그건 걱정 안 해도 되고."

"엄마야 좋지."

엄마도 심심하던 참에 잘됐다고 좋아하셨다.


31일 오후에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정육식당에 들러 육회를 포장하고, 족발 맛집에서 족발을 포장하고, 친정 근처에서 회를 포장했다. 남편이 엊그제 보너스를 받았다면서 내 통장으로 돈을 입금했는데, 혹시 더 받은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냥 속아주기로 했다.


쓸쓸하게 보냈던 연말에 우리 가족과 언니네 가족이 모여 집안이 북적거리니 엄마가 좋아하셨다. 엄마가 좋아하시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자기야, 오늘 정말 기분 좋다. 파티하자고 한 거 아주 칭찬해."



포장해 간 음식만으로 부족해 치킨을 주문했다. 남편이 매운탕을 끓인다고 하자 엄마가 못 미더운지 남편을 밀어내고 직접 하려고 했다. 엄마한테 살짝 다가가서 말했다.

"엄마, 그냥 앉아있어. 오늘은 박서방이 다 하기로 했어."

"그래? 그럼 사위가 끓여주는 매운탕 좀 먹어볼까?"

남편이 끓인 매운탕이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가족들은 둘째가 가지고 간 보드게임을 하고, 난 엄마랑 맨 정신으로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조금 한 기억이 난다.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와인, 소주, 맥주를 섞어 마시고는 취해서 주절주절 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미역국과 잡채, 불고기를 만들어 아침을 차려주셨다. 작년에 엄마 생일상을 차려드려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하지 못했는데,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다음 날이 내 생일)을 받으니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는 꼭 엄마 생일상을 차려 드려야겠다.


"생일 축하해."

"저 낳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덕분에 즐거웠어. 어떻게 처갓집에서 파티할 생각을 다 했대?"

"나 쫌 잘했지?"

"응. 잘했어."


"오늘 장모님이 미역국 끓여줬으니까, 난 내일 안 끓여도 되지?"

엄마가 차려준 내 생일상에 남편이 쓱- 숟가락을 얹었다.

"뭐야? 다 계획이 있었던 거야?"


내 생일 아침에 남편은 미역국을 끓이는 대신 편안하게 늦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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