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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Jan 09. 2024

생일에 받은 커다란 꽃다발과 코로나 확진


연초에 생일이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인 것 같다. 별다른 계획 없이 새해를 맞았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다 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올 한 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2024년이 시작되고 이틀이 지난날 아침에 눈을 떴다. '오늘 내 생일이지'라는 생각보다 먼저 든  '내 목이 왜 이렇지'라는 매우 불쾌한 느낌이었다. 목구멍을 칼로 베인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어제 아침부터 목이 살짝 따끔거리긴 했다. 그냥 목감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어제와는 차원이 다른 통증이 느껴졌다. 목뿐 아니라 등짝도 아프고 열도 났다.


이것은 1년 반 전에 겪어본 그것과 똑같은 아픔이었다. 코로나를 의심하면서도 설마설마하며 집에 처박혀 있던 검사키트를 해보니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반년 전부터 재택근무자로 지내면서 외출도 거의 안 하고 사람 만날 일도 별로 없는데 코로나에 걸리다니, 너무 억울했다. 가족 중 아무도 코로나 증상이 없다.


도대체 언제 걸린 거지? 코로나 잠복기는 평균 5~7일. 난 그 기간에 딱 한 번의 약속이 있었다.


전에 같은 직장에 다녔던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12월 초에 만나기로 했다가 미뤄서 19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코로나에 걸려서 26일로 미뤘다. 코로나에 걸린 지 일주일이 넘으면 감염이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 친구는 기침 한 번 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리는 사람인데, 이렇게 어이없게 두 번째 코로나에 걸렸다.


-나 코로나야. 두 줄 나왔어.

가족 톡방에 검사키트 사진을 올렸다.

-그럼 오늘 생파 못해?

-그냥 집에서 배달시켜 먹자.


저녁때 첫째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와, 고마워. 근데 요즘 꽃 되게 비싸지 않니?"

엄마 생일에 꽃을 사들고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아들의 다정함에 행복했다. 잠시 후에 둘째가 케이크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오늘 아이들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없이 챙긴 적이 없었는데...



잠시 후에 남편이 들어왔다.

"뭐야? 자기는 왜 빈손이야?"

남편이 말없이 씩 웃었다.


남편이 피자와 곱창볶음을 주문했다. 곱창볶음을 주문한 건, 그 곱창집이 서비스로 미역국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식사를 했다. 목은 아파도 입맛은 좋았다. 케이크에 촛불을 입으로 불어서 끌 수가 없어서 손바닥을 쳐서 껐다.


둘째가 남편한테 말했다.

"아빠, 케이크 삼만 이천 원이야."

"뭐야? 이거 네가 산 거 아니었어?"

"응, 아빠가 사 오라고 한 건데."

"그럼, 저 꽃도?"

"돈은 아빠가 냈지만 제 마음이 담겼다고요. 히히."

"어쩐지 꽃다발이 크더라."


자기 전에 남편한테 살짝 물었다.

"어떻게 애들 시켜서 꽃이랑 케이크 살 생각을 했어?"

"애들한테도 가르쳐야지. 부모 생일에 선물하고 그러는 것도 해봐야 알지."

"난 어릴 때 엄마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꼬박꼬박 챙기거든. 애들도 나중에 다 하게 돼있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은 아니어서 남편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그래, 잘했어. 다음에는 꽃 보다 좀 더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걸로 부탁할게."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코를 골기 시작한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자기야, 코로나 옮으니까 아들 방 가서 자."

"우리 연휴 동안 계속 붙어있었잖아. 옮으려면 벌써 옮았겠지."

"그런가? 그럼 선물 고마우니까 내가 뽀뽀해 줄게."

내가 뽀뽀를 하자고 입술을 들이밀자 남편이 도망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이 생일 선물을 물으면

"호텔방 하나 잡아줘. 하루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하곤 했다. 코로나 덕분에 드디어 그럴 수 있는 날이 왔다. 깔끔한 호텔방이 아니라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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