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다. 도서관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따뜻한 보리차만 홀짝 거리다가 작가의 서랍에서 일 년 전의 메모를 찾았다. 조금 전까지 있던 안경이 감쪽같이 사라져 찾아 헤맨 이야기다.
나는 외출할 때, 티브이 볼 때 그리고 청소할 때 안경을 쓴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저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고 있어도 못 알아보고 지나가 오해를 사기도 한다. 티브이 볼 때도 자막이나 인물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 불편하고, 청소할 때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외 휴대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할 때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게 오히려 편하다. 그렇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한다.
외출할 일이 있어서 안경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안경을 썼던 기억을 더듬어 화장대 위를 보았으나 없었다. 식탁에도 없고, 침대 머리맡에는 남편의 안경만이 놓여있었다. 욕실과 점퍼 주머니와 가방을 뒤졌는데도 안경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뒀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앗, 혹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 혹시 내 안경 가져가지 않았어?
-아니
-자기 안경은 집에 있는데?
-안경 안 가져왔어.
안경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나는 안경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외출하기로 마음먹고는 거울 앞에 섰는데... 안경이 보였다. 안경은 내 머리 위에 살포시 얹어있었다.
일 년 전의 나는 이렇게 정신머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더 그렇다. 깜빡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고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다 보면 꼭 놓치는 일들이 생긴다. 어제 도서관에 오면서 텀블러를 챙기는 걸 깜빡했는데 오늘은 텀블러에 보리차를 넣어 잘 챙겨 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반납해야 할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따가 운동삼아 한 번 더 오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빡하는 것들이 늘어가는 만큼 마음의 여유도 늘어가는 느낌이다. 내가 왜 이럴까 보다는 내가 그렇지 뭐,라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을 할 때는 전보다 한번 더 검토하고 메모하며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지금 늙어가는 나와 친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