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할 수 있는 답이라고는 텔레비전 보기, 술 마시기 정도뿐이었던 내게 3년 전쯤 글쓰기라는 취미가 생겼다. 그리고 뒤를 이어 독서, 뮤지컬 보기, 달리기 같은 취미들이 줄줄이 더 생겼다.
내가 이렇게 혼자만의 취미 활동을 즐기는 모습이 살짝 못마땅했던 남편이 어느 날 말했다.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 골프 배워볼래?"
그렇게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반이 되었다. 내 평생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한 운동은 골프가 처음인데 너무 재밌다거나 알고 보니 내가 골프에 소질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건 전혀 아니다. 내 평생 이렇게나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처음인지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버티다 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날마다 싸우는 심정이었던 건 아니다. 내 몸이 내 생각대로 잘 움직이고 공이 저 멀리 뻥뻥 잘 날아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내 기분도 공을 따라 날아다녔다. 한번 그런 날이 오면 계속 유지되면 좋으련만, 골프란 녀석은 나랑 밀당이라도 하려는 듯 다음 날은 골프채를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 튀어나가곤 했다. 골프가 하루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골프를 포기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레슨을 포함한 연습장 비용은 내가 그동안 취미생활을 위해 써본 적 없는 큰돈이었고, 그 돈만큼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주 5일 이상 연습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3개월쯤 지나 남편한테 골프 클럽을 선물 받았다. 내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또 큰돈을 들였으니 열심히 해야만 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1년이 가까워지도록 드라이버를 제대로 치지 못했고 방향도 왔다 갔다 했다. 분명 취미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어디 가서 골프가 취미라고 말할 수 없었다. 비거리가 얼마냐라든가 몇 타 치냐, 혹은 같이 치러 가자고 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취미는 즐거워야 하는데 골프는 내 자존감을 계속 깎아먹고 있었다.
처음 몇 개월 레슨을 받고 혼자 유튜브를 보고 연습하면서 몇 달을 헤매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레슨을 받았다. 전에 만났던 두 명의 프로는 내가 잘못하는 부분을 고치기 위해 매번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면, 그때 만난 프로는 20회 레슨을 받는 동안 한 가지를 강조했다. 백스윙할 때 몸이 옆으로 밀리지 않게 하라는 것.
그걸 고치고 나서 내가 헤맸던 많은 부분이 해결됐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차이였다. 그동안 내가 헤맨 건 기본을 탄탄하게 만들지 않고 이런저런 기술들을 익히고자 해서였던 것 같다. 빨리 잘 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조급했었다.
골프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몇 개월에 마스터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비거리를 낼 수 있게 되니 퍼팅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숏게임도 연습해야 하고, 벙커에 빠지면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도 연습해야 하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게 끝이 없는 것 같다.
골프를 1년 반 치면서 느낀 건, 백스윙도 중요하고 손목 쓰임, 골반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멘털'인 것 같다. 공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아지거나 두려워하면 실패할 확률이 올라간다. 공 앞에서 강한 멘털을 갖기 위한 방법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내 몸에 흔들림 없는 바른 자세를 입혀 놓는 것 아닐까.
요즘은 누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 연습장을 가고 스크린 골프장을 가기도 한다. 주변에 골프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골프가 내 맘대로 안 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오죽하면 모기업 회장님도 인생에서 마음대로 안 됐던 것 세 가지 중 하나로 골프를 꼽았을까.
드라마 보다 골프 경기가 더 재밌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 티브이로 4시간 정도 KLPGA 경기를 보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실수로 느껴진 순간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내는 모습이나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선수들의 강인한 모습에서 드라마 보다 더한 감동이 느껴졌다.
또 하나, 골프를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요즘 내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노후준비'다. 다달이 일정금액을 개인연금과 주식계좌에 넣는 등 금전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노후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돈뿐만 아니라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취미를 만드는 것도 노후준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지금 취미로 하고 있는 골프와 글쓰기, 독서는 내 노후준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제 취미는 골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