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동호회와 직장 단체에서 오신 분들, 가족단위로 오신 분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7시 30분에 집결지에 도착하여 물품보관소에 소지품을 맡긴 뒤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하고 한참 동안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모습을 바라봤다.
고1 아들은 10km를 달려보고 싶다고 해 함께 신청을 했는데,이틀 전에 학교에서 오른쪽 발등을 다쳐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아들은 달리기는 못 하겠으나 오늘 예약해 둔 식당에 꼭 가보고 싶다며 따라 나왔다.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오니 마치 축제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먼저 하프코스 참가자가 출발하고 10km, 5km 순서로 10분 간격으로 출발했다. 못 달리겠다던 아들도 일단은 가보다가 중간에 돌아오겠다며 출발했다.
5km 출발을 기다릴 때 눈에 띄는 의상부터 남다른, 딱 보기에도 센 언니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의상뿐 아니라 몸도 체지방이 별로 없어 보이는 야생마처럼 잘 달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출발선에서 딱 앞자리를 차지한 그녀들은 출발과 동시에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이 많고 길이 좁으니 혼자 달릴 때 보다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매일 밤에 달리다가 아침에 달려서 그런지 기운도 좀 안나는 것 같았다. 연습할 때 쓰던 달리기 앱을 틀고 평소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는데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앞질러 갔다.
아들이 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 앱이 잘못된 것 같아요. 제가 달려봐서 아는데 엄마가 5km를 25분 내에 완주할 리가 없어요."
"아냐. 엄마 빨라."
그렇게 아들의 말을 무시하고는 내가 잘 달린다고 믿고 있었다.
오늘에야 알았다. 달리기 앱이 날 속였다.
나를 앞지르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내가 앞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내 앱에 6.5km 이상 달렸다고 표시되던 순간에도 오늘의 5km 달리기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망했다.
내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한계는 30분이었다.
마지막에 달리기를 멈추고 걸었다. 총 34분 걸렸다.
거리측정이 제대로 안 되는 앱을 사용해 혼자 연습하며 내가 잘 달리는 줄 믿고 있었던 나.
코미디가 따로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 잘 달릴 것 같아 보였던 그녀들은 역시나 내가 2km를 가기도 전에 이미 반환점을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들 말고도 잘 달리는 사람들은 정말 정말 많았다.
햇병아리의 꿈은 그렇게 부서졌다.
<오늘의 교훈> 어느 날 갑자기 의욕만 가지고 시작한 일이 너무 잘 풀린다면 일단 의심하라. 특히 혼자 하는 일이라면 더욱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객관적으로 확인하라.
달리기가 끝나고 허탈한 마음으로 기념품을 받아 아무 데나 앉았다. 완주가 끝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빵과 음료를 먹고 있었다. 각자 달렸던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웃고 완주 기념 메달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와 함께 온 사람들, 유모차를 밀며 달린 아빠들도 있었고, 마치 방금 손빨래를 하고 제대로 짜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땀이 뚝뚝 떨어지는 노장의 완주자도 있었다.
이 대회에서 1등을 하겠다고 바동거렸던 내가 우스웠다. 말이 대회지 이건 그냥 축제다. 1등을 목표로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이제는 오직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 만난 노장의 마라토너처럼 오랜 시간 동안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다.
중간에 돌아오겠다던 아들이 1시간이 넘어서야 나타났다. 중간에 돌아오기가 부끄러워 완주를 했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오른발이 아파 왼발에 힘을 주고 달려 피부가 벗겨진 왼쪽 발바닥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오늘의 진정한 1등은 너다, 아들아!
열심히 달렸으니 이제 상을 받아야겠지.
내가 예약한 식당은 63 빌딩 59층에 있는 '워킹 온 더 클라우드'
여기는 메인 메뉴를 주문하면 샐러드바를 이용할 수 있다. 손바닥 반만 한 안심 스테이크와 양갈비 스테이크의 양이 조금 아쉬웠으나, 샐러드바의 음식들이 깔끔하고 담백했다. 그리고 직원들이 매우 친절했다.
식사비용은 내가 한 달간 점심을 먹지 않고 산책을 하면서 남는 돈으로 나에게 선물을 하기로 정한 16만 원으로 지불했다. 나에게 주는 9월의 선물이다.
테이블에 앉아서 내려다본 풍경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는 말이 없던 아들이 어느새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는 자부심과 멋진 공간에 와 있다는 만족감에 즐거워 보였다.오랜만에 아들과 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그동안 쓰던 S사 달리기 앱을 지우고, '런데이'라는 앱을 깔았다.
앞에서 1등을 목표로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했지만, 1등을 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목표가 있었기에 열정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고 이만큼이나마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한 달간 1등을 목표로 달린 것을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는 빨리 달리기보다는 오래 달리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편안하게 달리게 되면 그다음에는 40분, 5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연습을 할 것이다.
마라톤대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음 달 열리는 대회를 검색했다.
마라톤대회는 10월이 시즌인가 보다.
넘쳐나는 대회 중에 15일에 뚝섬유원지에서 열리는 '국제연맹 RUN FESTA'에 참가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10km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거니?
이제는 1등이나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달리기를 하면 생각이 비워지면서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 속에서 많은 깨달음과 즐거움을 얻는다.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한 한 달 전 그날에 비해 오늘의 나는 분명 성장했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달리는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P.S. 그동안 저의 연습과정을 응원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초보 러너 훈련일지#1,#2는 다큐가 아닌, 코미디였다고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