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한 바퀴(400m) 걸은 후, 달리기 앱을 켜 거리 목표 5km로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처음에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은 호흡이다.
2:2 호흡(짧게 두 번 들이마시고 두 번 뱉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속도를 줄여야 한다.
오늘은 마지막 1km 남은 지점부터 속도를 내 보았다.
기록은 25분 16초. 이틀 전보다 50초 빨라졌다.
2022년 9월 1일 (목)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깨와 허벅지가 아프다.
업무가 바쁜 날인데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홍삼 스틱을 먹었다. 그래도 계속 피곤하다.
25분대가 나에게 무리한 빠르기였던가.
저녁에 삼겹살을 너무 많이 먹은 건지 3km 넘어서부터 옆구리가 당긴다.
포기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어느 집 대문이 열리더니 휠체어를 탄 젊은 남자가 나왔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오늘의 기록은 25분 59초.
어제보다 43초 느려졌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나를 칭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두 다리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2022년 9월 3일 (토)
오늘의 기록은 25분 38초.
작전을 좀 바꿔야겠다.
중간에 숨이 차서 달리기 힘들까 봐 두려워 속도를 못 내고 있는 것 같다.
중간에 멈출 각오로 속도를 좀 내보자.
2022년 9월 4일 (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후에 잠깐 비가 그쳐 학교 운동장을 두 바퀴 달리는데 다시 비가 내렸다.
연습을 포기하고 도서관으로 갔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위한 완벽 가이드'와 '달리기의 과학'이라는 책을 대출해서 읽었다. 나의 연습방법에서 보완해야 될 부분을 찾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과도한 연습으로 부상이 오지 않게 내 몸상태를 잘 살피는 것이다.
훈련 5주 차 목표 :
24분대로 달리기가 목표였으나, 태풍과 코로나 확진으로 연습 불가.
달리기 책을 읽자.
2022년 9월 5일 (월)
지난 금요일 막내에 이어 둘째도 코로나에 걸렸다.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삼시세끼 열심히 먹고 있다. 몸이 무거워져 못 달릴까 걱정이다.
태풍 힌나노의 영향으로 비가 계속 내린다.
그냥 편하게 먹고 쉬자.
내일까지는 쉬고, 비가 그치면 각오해라 써니!!
2022년 9월 6일 (화)
비는 그쳤으나, 나도 코로나에 걸려 달리기 연습을 할 수가 없다.
달리기 대회 주최 측에서 택배가 왔다. 주황색 기념 티셔츠와 번호표를 받았다.
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데 앞으로 일주일을 어찌 버텨야 하나...
책을 읽으며 더 잘 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해 보려 했지만, 달리기는 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듯.
훈련 마지막 주 목표 :
두려움을 극복한다.
달리면서 내가 갖는 두려움.
속도가 너무 빨라 숨이 차면 어쩌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 어쩌나,
기록이 지난번보다 못 나오면 어쩌나.
이것들은 모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추석 때 영화 '최종병기 활'을 세 번째 보았다.
이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본 이유는 마지막 대사를 듣기 위함이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고작 달리기 하면서 비장하기도 하지 ㅋㅋ
2022년 9월 13일 (화)
열흘 만에 연습 재개.
1km 정도를 달리고 나면 항상 나에게 말을 거는 내가 있다.
'오늘 컨디션 별로지 않아? 포기는 빠를수록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또 다른 내가 대답한다.
'난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 하지만 그 순간이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멈추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3km 정도 달리다 보면, 고요해진다.
오른발 다음 왼발을 앞으로 보내고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 외엔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된다.
오늘 기록은 25분 04초.
뭐지? 코로나 여파로 목 상태가 안 좋아서 뛰는 동안 기침도 나오고 그랬는데 기록이 빨라진 이유가 뭘까?
마침내 두려움이 극복된 것인가.
2022년 9월 14일 (수)
오늘 기록은 24분 19초. 드디어 25분 안으로 들어왔다!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은 달리기 앱에서 5km에 도달했다는 팡파르가 울릴 때이다.
오늘도 해냈다.
수고했어.
2022년 9월 15일 (목)
마지막 연습이다.
23분 14초. 현재 최고 기록이다.
한 달 동안 5km를 아홉 번 달렸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거리이다.
기록은 처음 31분대에서 23분대로 당겼지만, 목표했던 21분대는 도달하지 못했다.(아직은)
달리기를 하면 두 명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나약하고 두려움 많은 나, 열정과 의지가 불타는 나.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다.
'열정과 의지가 불타는 나'는 나를 달리게 해 주고, '나약하고 두려움 많은 나'는 쉬어야 할 때를 알려준다.
이 둘과의 달리기는 대회가 끝나고도 계속될 것이다.
2022년 9월 16일 (금)
나의 최고 기록은 내일 나온다.
타인의 속도에 신경 쓰지 말자.
나를 믿고, 신나게 달려보자.
*부끄럽지만 나중에 달리기 대회 나가서 보니 거리측정이 잘못되었어요. 저는 5km를 30분 안에 달리지 못한답니다. 글을 지울까도 생각했지만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라 달리기 연습을 하며 느낀 저의 감정과 노력들이기에 그냥 둡니다. 귀엽게 봐주세요.^^ (22년 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