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만나다

60대에 만난 블로그

by 감성마루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연금공단에서 온 것이다. '내 인생 에세이 쓰기(블로그 활용)' 교육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전 공단에서 블로그 교육이 있다는 안내 문자를 받고 신청해 본 것이었다. '신청한 대상자는 추첨을 통해 선정한다.'는 안내글이 있었기에 반신반의한 마음이었다. 평소 행운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를 받은 순간 설렘이 일었나 보다.


직장에서 근무할 당시 컴퓨터 바탕화면에 폴더를 만든 뒤 글쓰기를 저장해 가며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바쁜 일상 탓에 번번이 계속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언젠가 이 말을 들은 첫째 딸이 "엄마가 적은 글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도 있고, 자신의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으니 한번 시도해 봐."라며 블로그 글쓰기를 권유해 주었다. 과다한 업무로 인한 힘겨운 일상에서 뭔가 새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라 그때는 애써 외면했었다.


퇴직을 한 지금 딸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도 생겨났다. 교육 날짜가 다가오자 우려했던 대로 무언가를 새로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간간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였다. 그럴 때면 '퇴직자들 상대의 교육이라 다들 비슷할 거야.'라고 몇 번이나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그럼에도 연륜에서 묻어난 오만함 탓인지 미리 예습할 열정은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오기에 그냥 부딪혀 보기로 결정해 버렸다.


교육이 시작된 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걸어가면서 마음속에서 번갈아가며 솟구치는 두려움 반, 기대반의 복잡한 심정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긴장한 탓인지 아랫배에 통증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 길가에 흐드러지게 활짝 핀 벚꽃이 시야에 들어왔다. 햇살을 가르고 눈처럼 휘날리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넌 잘할 거야, 잘 해낼 거야.'라며 나를 다독여주는 듯해서 다시 용기를 냈다.


블로그 길 안내자인 '더블와이파파'님을 만났다. 배움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네이버 ID와 비밀번호가 있어야 블로그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직장 다닐 때 보안 때문에 컴퓨터 내부망과 외부망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외부 메일 대신 직장 내 공용 메일만 사용이 가능했던 탓에 네이버 ID가 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긴장했던 탓인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어떻게 하지.


내 나이에 배우려고 마음먹었으니 무지의 부끄러움은 내려놓아야 했다. 용기를 내어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도움을 받아 2005년에 가입했던 ID를 찾고서야 밋밋한 내 블로그를 영접할 수 있었다. 산 넘어 산이다. '블로그 정보'라는 새로운 벽이 또다시 나를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블로그명, 별명(닉네임), 소개 글, 프로필 이미지'를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느림의 미학이 절정에 달하면서 잔뜩 위축되어 버렸다.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 명함인 닉네임이라고 하였다. 머릿속에 답이 떠오르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가족 카톡 방에 닉네임 추천을 부탁하는 글을 올려 보았다. 무뚝뚝한 남편과 막내아들은 예상대로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두 딸은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설명까지 덧붙인 여러 개의 닉네임을 추천해 주었다. 역시 이럴 땐 딸이 최고지. 우여곡절 끝에 '감성 마루'라는 나의 닉네임이 탄생했다.


이번에는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며칠 전 버스에서 노인이 또 다른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을 되살려 글을 써 내려갔다. 쓰면서 그날을 회상하는 순간 그때 느꼈던 따스했던 마음도 소리 없이 피어올랐다. 흐뭇함도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글쓰기를 통한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인가. 마침내 내 블로그에도 한 편의 글이 생겨났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발행된 내 글 아래에 누군가의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에 답글을 달았고 새로운 이웃들도 생겨났다. 얼굴도 모르고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없이 오로지 닉네임과 글로 만난 사람들이 이웃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 편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다양한 소재와 사연을 주제로 한 글도 접하고 소통하는 법도 배웠다.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참으로 신기했다.


블로그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종이책과 달리 글 중간에 사진이나 이미지를 첨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글을 공유하거나 책을 소개할 수도 있었다. 지금 블로그에는 한 편의 글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지만 다수의 글이 탄생할 날을 상상해 보았다. 동행하며 채워가는 블로그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희망과 바람도 생겨났다.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게 된 것이었다. 블로그에 접속하고, 이웃들의 글을 읽으며 소통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갔다. 숨겨진 기능을 하나씩 접하고 배울 때마다 신세계를 만난 듯 행복은 두 배로 다가오는 듯했다. 지금은 더딘 배움일지라도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익혀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60대의 도전이 현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도전을 통해 성장해 가는 일상이 즐겁다.


'감성마루'라는 이름으로 전자책을 발행할 그날을 꿈꾸어 본다.



사진: Unsplash의Aaron Bu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