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좋다

일상에서 찾은 행복

by 감성마루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겠다. 난 지금의 내가 좋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젊거나 돈이 많거나 잘났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냥 지금의 내가 갈수록 좋아진다는 것이다.


우선 나는 내 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사용할 수 있어 좋다. 퇴직과 동시에 37년간 쉬지 않고 쏟아졌던 일과의 전쟁이 사라졌다. 그 속에 묻혀있지 않아도 된다. 늦잠을 자더라도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다. 집 앞 카페에서 사 온 커피 향과 맛을 음미하며 넷플릭스를 정독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거실에서 파키라, 뱅갈고무나무 등에 물을 주고 잎의 먼지를 제거해 주는 여유도 가진다. 수영 강변에서 산책하며 강물과 일대의 푸르른 나무와 바람에 실려 오는 풀 향기에 파묻히기도 한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탐할 수 있게 되니 "그동안 수고했다. 애썼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먹거리와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연금이라는 놈이 있다. 37년 일한 대가이다. 남편의 놀이터인 독서실에서 생기는 수입을 합하면 괜찮게 살 수 있다. 매주 양산 원동에 있는 시골집 텃밭에서 가꾼 먹거리도 가져온다. 부부만 살다 보니 매끼 소란스럽게 차리지 않아도 된다. 남편과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인 아파트도 한 채 있다. 삼 남매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넘치는 공간이다. 이만하면 땡잡은 거다.


매일 운동할 수 있는 곳이 가까워서 좋다. 아파트 내 헬스장은 엘리베이터만 타면 바로 그 앞에 도착한다. 헬스복과 샤워 시설이 있어 몸만 가면 된다. 수십 종의 운동기구가 있지만 그중 좋아하는 것은 천국의 계단과 러닝머신이다. 운동이 시작되면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된다. 60대의 관리가 70대의 삶을 좌우한다는 말에 솔깃해진 노년의 건강을 위한 노력이다. 운동인지 노동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지치면 다음 날 운동은 건너뛴다. 땀이 배어나서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순간의 희열은 매번 새롭다.


나는 글쓰기로 만난 세상도 좋다. 퇴직 후 글쓰기를 시작했다. 평생교육원에서는 오프라인 친구들을, 블로그에서는 온라인 친구들을 만난다. 오프라인 친구들이 직접 읽어주는 수필을 귀로 듣고, 내 글에 대한 평가도 받는다. 수업 후에는 점심 한 끼와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는 덤이다. 대화 속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여유와 품격이 묻어난다. 서로를 알아가며 글에 얽힌 뒷얘기도 재밌다. 온라인 친구들의 글은 다양해서 새롭다. 서로의 글 아래 댓글과 답글로 소통한다. 비대면의 자리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가 묻어나고 격려와 응원이 넘쳐난다. 이런 친구들과의 만남은 행운이다.


복지관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어서 좋다. 그곳에서 진행하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수업을 듣는다. 무료라는 매력이 있었고, 매달 수업의 종류도 달라진다. 저탄소 요리, 캘리그래피, 천연 향수 만들기를 배웠고, 다음 달에는 가죽 열쇠고리 만들기를 배울 예정이다. 수업에는 늘 참여하는 지역 주민들이 다수다 보니 또 다른 이웃이 생겼다. 수업의 목적이 지역 주민과의 교류 활성화라고 하였는데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렇게 되었다.


쓰다 보니 이런 내가 조금 웃기는 것 같다. 또래의 사람들이 나름 신명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마치 나만 이런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나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때가 많아진다. 행복을 만난 순간을 지인들에게 말하기도 좋아하게 되었다. 좋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말로 표현하고 싶어진다.


예를 들면 최근 글로 인해 만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친구들에 대하여 말하면 놀라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왜 그러냐고? 그 사람들은 오랜 기간 보아 온 내가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응에 기쁨이 샘솟는다.


요즘 호들갑의 분량이 늘어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때면 "야, 멋있다. 정말 멋있어, 그런 게 있었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더 힘이 난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고 씁쓸해진다.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데 무슨 문제겠는가.


새로운 만남의 자리도 늘어간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찬사를 보내며 보기 좋다고 칭찬해 준다. 이런 적극적인 표현으로 서로 탐색하는 시간과 불편을 줄이고 경계심을 허물어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즐거운 데는 이런 행동의 변화가 한몫했다.


지금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역시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 남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고령인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 우리가 아프면, 노후에 먹고살기 어려워지면 등 걱정할 일들이 많고도 많다. 하지만 마음 졸이며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아버렸다. 걱정은 걱정일 뿐 모두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현재 만나는 사람들, 지역별 특징이 묻어나는 축제 현장, 집 밖을 나서면 만나는 풍경들을 즐기며 살기로 했다.


지금도 이런 생활은 현재 진행 중이다. ‘살만하니 그렇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즐겁게 오늘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뭐든 좋아하는 걸 배워가며 살기로 했다. 인생을 걱정하면서 살기보다 오늘을 즐기면서 살기를 선택한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