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강변 산책
수영 강변 산책길에 나섰다. 아파트와 연결된 육교를 건너면 바로 만날 수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 좌측으로는 강의 끝에서 바다를 끼고 광안리해수욕장까지, 우측에는 석대화훼단지를 지나 회동수원지까지 연결되어 있다. 부산의 갈맷길 중 한 코스이다.
오늘은 우측 길을 택했다.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허락된 시간이라 좋다. 설렘으로 나선 길이건만 이내 대지를 삼킬 듯한 햇살의 기세에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자전거 도로와 나란히 있는 탓인지 그늘을 드리워줄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점점 좁아지는 강폭 탓에 하늘 걷기 등의 운동기구와 둥근 돌기가 솟아 있는 지압길과 삐죽한 농구대만 줄지어 늘어서 있을 뿐이다. 수풀에서 묻어오는 향기와 햇살 담아 빛나는 수채화 같은 산수국꽃들이 길의 단조로움을 달래준다. 얼마 걷지도 않았건만 머리에 맺힌 땀방울이 귓가를 스치듯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평일임에도 사람이 많다. 푹 눌러쓴 모자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토시까지 낀 채 해를 이겨보려고 기를 쓰는 중년 여인들의 수다와 호탕한 웃음이 침묵 속의 나를 깨운다. 개와 산책을 즐기는 이도 보이고,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거니는 새댁도 보인다. 그중에서도 말없이 옆을 스치듯 천천히 걷고 있는 노부부와 시선을 떨군 채 홀로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이 눈에 띈다.
이럴 때면 묻어둔 기억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이가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직후부터 십 년간 매년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건강했으나 당뇨가 있었다. 당수치가 급격히 올라 입원한 병원에서 가족 면담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호자의 연락처를 요구한 의사의 한마디에 무너져 버린 그날의 아버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반나절 만에 만난 얼굴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폐에 작은 점이 보여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했고, 정기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갑자기 숨이 차서 걷기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병원에서는 폐섬유화가 진행 중인데 폐에 염증까지 생겼다고 했다. 정기 검진일이면 “내가 무슨 죽을 병에 걸렸냐.”라며 동행을 한사코 거절했던 탓에 우리는 몰랐다. 무거운 짐을 자식들 앞에 내려놓지 않으려고 혼자 힘으로 버텨 내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병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삶에서 길 위를 걷는 일상은 사라졌다. 자력으로 공기를 흡입하고 내뱉을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한 것이다. 산소 콧줄과 산소 발생기와 휴대용 산소통은 늘 함께여야 했다. 거실과 방이 세상의 전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폐에 염증이 잦아졌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다. 폐의 기능이 떨어지자 암이란 놈이 틈새 또아리를 틀었다. 그놈은 이상하리만큼 씩씩하게 자랐고 왕성하게 번식했다. 아버지는 끝내 전투에서 패배하였고 세상을 떠났다.
기나긴 투병은 어머니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병간호로 지쳐 건강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것을 우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걷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묻는 말에 대답이 늦어졌고 그 답조차도 어눌하였다.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과 더불어 급격히 저하된 체력 탓이라고 여겼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아버지는 삶을 연장했지만, 그 시간만큼 어머니의 수명은 줄어들었나 보다.
배우자 사망 후 삼 년을 잘 넘겨야 한다고 했던 사촌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고, 두 번의 뇌수술과 한 번의 심장 수술을 받는 힘겨운 과정을 견뎌야 했다. 이겨냈지만 투병 중 만난 이웃들이 “왜 이렇게 못 쓰게 되었냐.”라고 내뱉은 한마디와 파킨슨병 진단까지 겹쳐 지금은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어머니의 일상에도 산책은 조용히 사라졌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어김없이 두 분이 떠 오른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야. 힘내.”라고 말해 주는 듯했다. 일상에서 걷는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소중한 줄 몰랐다. 아버지의 마지막과 어머니의 현재가 그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산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리꽃을 좋아한다. 몇 번을 물어봐도 이유는 말해 주지 않고 매번 “그냥 좋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이틀 전 어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나를 보자마자 마당 한 곳을 가리키며 옮겨 심어 두었는데 겨울을 이겨내고 올해도 꽃을 피웠다며 웃었다.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화분이 하나 놓여있었다. 샛노란 나리꽃 두 송이가 활짝 피었고, 터질 듯한 세 개의 꽃봉오리가 떨리는 중이었다.
그날의 환한 웃음이 떠올라 새로운 나리꽃을 사려고 나선 길이다. 한 시간가량 걸어가야 화훼단지 내 줄지어서 기다릴 나리꽃을 만날 수 있다. 가장 튼실한 꽃으로 고를 것이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도 덩달아 웃으며 좋아하지 않을까. 산책길의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