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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May 21.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3

내 연애가 볼품없었던 이유

팀원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미정의 작업을 저평가하는 팀장으로부터 모욕감을 느꼈을 그녀지만 그 뒷모습이 애처롭기만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내면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하루가 고되기만 했던 그녀 앞에 놓인 문구는 소설 '운수좋은 날'의 결말같다. 미정은 어떻게 저렇게 강한 내면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 드넓은 자연과 함께 성장한 배경 때문일까? 과묵하지만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아버지 때문일까? 

미정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하지만 같은 부서의 디자이너 동생이 말한 것처럼 미정은 특별하다. 아직 자신도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를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개새끼들도, 시작점은 다 그런 눈빛.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 별볼일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하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
다.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될까.

어디서 답을 찾아야할지 모르겠다는 미정의 마음이 찌는 더위 속 무기력한 우리들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적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유는 안전이었다. 관계로부터 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애를 함에 있어서는 늘 방어적이었다. 그리고 관계를 정리할 때마다 합리화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둥, 상대방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둥, 취미가 맞지 않는다는 둥의 어줍짢은 이유로 나보다는 상대방을 탓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상대방에게 "별볼일없는 인간"이라는 눈빛을 발사했던 것 같다.

연애상대를 고를 때 까탈스러운 기정에게 현아가 했던 말이 있다. 

남자가 왜 없어요. 응? 이렇게나 많은데? 80점짜리를 찾으니까 남자가 없지. 상대가 80점이어도 모자란 20때문에 남자 족치고 더 괜찮은 남자 없나 짱보고 그러잖아요 언니~ 근데 무슨 아무나 사랑한다고...난 텃다고 봐. 아니~ 나는~~ 20점짜리도 그 20이 좋아서 사귀는데? 20이 어디야. 좋은게 20씩이나 있는데. 어쩌다 30점짜리 만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40점짜리 만나면 대박. 자기가 80점이라서 80점짜리 찾는거면 이해를 해. 자기 자신을 좀 알라고요. 

나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심장이 찌릿하게 아팠다. 관심이 가는 상대가 생겨도 자기 검열이 먼저였다. 나와 맞는 상대일까 부터 고민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묻고 있다. 대체 뭐가 나와 맞는지를 고민했느가 이다. 늘 같은 패턴으로 사람을 만났고 만나다 시들해졌고 저절로 소원해지다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정리가 되어 버렸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해 본 적도 있었지만 오래 하지는 않았다. 지나고 보니, 나는 상대방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나를 사랑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삶에 대한 열정이 식고 나니, 감정 소모도 낭비같아서 지금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대체로 적정선을 그어 놓고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관계도를 보면 다시 가슴이 쿵쾅거린다. 나도 저들과 같은 사람냄새나는, 사람같은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언제였더라...? 아니면 나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나? 

 목공일을 하다가도, 농사일을 하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산을 멍하니 바라보던 구씨가 산을 보지 않는다. 드라마 시작부터 먼 산만 바라보던 그가 시선을 옮겼다. 아마도 미정이 "추앙"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부터가 아닐까. 

나는, 못난 사람이었다.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했다. 내가 정해놓은 규칙이나 가치관, 삶의 방향을 한 번 정하면 변하면 안되는 것이라 여겼다. 흔들리면 안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하지만 결국 나는 내 소신대로 하기로 결정해 버린다. "추앙"에 대한 미정의 제안, "인사는 하고 지내자"는 그녀의 자극이 완고하던 그의 철벽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다 설렜다. 나였다면 잠깐 고민하다가 흔들리는 나를 나약하다고 비난하고 딴 생각하지 못하게 몰아 붙였을 것이다. 

난 무엇이 무서웠던 것일까? 

거절당하는 것, 만나다가 헤어지는 것, 관계가 발전하는 것까지도 두려워했던 것같다. 그것 말고 더더 깊은 내면에 있는 불안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알수없는 그 두려움에 망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두려움에 직면할 날이 올 때 용감하게 대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진짜로 하는건 어때요? 해방...클럽. 저는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갖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갖힌것 같애요. 속시원한게 하나도 없어요. 깝깝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해방되고 싶다는 미정의 말에 공감한다. 

지금까지 내 의지대로 살아왔다고 여겼었지만 그 모든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맞춰서 살아왔고 그 시스템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쳐버렸다. 시스템에 맞춰 살기위한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시끌벅적한 세상을 벗어나 나와 사이좋게 살아 가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러려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모두가 이 세상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들 꾸역꾸역 시스템 안으로 자신을 몰아 넣는다. 튕겨져 나오면 죽을 듯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때 내신성적을 비관해서 자퇴를 하던 아이들을 패배자인 듯 말하던 어른들이 떠올랐다. 나도 자퇴...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퇴 그 후의 삶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용기내지 못하고 남아 있으면서 숨막힌 시간을 보냈다. 

숨통이 트일 날을 기다렸지만 글쎄, 아직도 나는 숨통이 조여오는 무언가를 느끼며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 해방클럽에서 사람들이 해방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동안 나도 나만의 방법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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