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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Jun 09. 2023

봉사...라는 걸 하고자

요양보호사를 선택했었다.

작년 겨울, 내 삶의 무료함이 불안해지기 시작할 때 새로운 것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엔 벌려 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수습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내는 것들도 많았다. 욕심은 많아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했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시차를 두지 않고 일단 저질러 버렸다. 동시에 시작한 것들도 두 세개씩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마무리를 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면 결국 한 두가지는 포기, 어쩔 때는 모두 다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합리화하면서 미완이지만 해 보았다는 것에 만족하자며 그렇게 흐지부지 흘려 보낸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돌이켜보아도 도전해 본 것은 후회되지 않는다. 좀 더 계획적이고 구체적으로 시작해서 끝을 잘 마무리했더라면 어땠을가 하는 아쉬움은 늘 크다. 그래서 불혹이 되면서 삶의 자세를 바꿔보기로 했다. 시작은 신중하게 하고 시작한 것을 무조건 끝을 보기로 했다. 그 전에 근질근질한 것들은 노트에 정리해 두고, 마음이 끌릴 때마다 상상의 나래를 펴보고 접었다.

한때,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던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아주 심플한 생활을 선택해서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를 설계했다. 그 패턴을 수 년동안 유지하다 보니 흐트러졌던 나의 삶이 정돈되어갔다. 숨통이 트이고 살만해 지니 무료함이 찾아왔다. 너무 심플한 일상이 의미없이 느껴졌고 살만해 지니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즈음에 오래 전 어렴풋이 생각만 했던 것이 떠올랐다.

요양보호사... 내 노년을 보낼 직업군이라 생각하고 적당한 시기에 자격증을 취득해서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이타심에 의한 결정이었다기 보다는 일분 일초도 내 삶에 무의미한 시간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찾아본 일 중에 의미부여도 가능하고 스스로 보람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야간반을 등록해서 일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공부했고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했어도 곧바로 일을 시작할 마음은 없었다.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할 일이 생겼고 오전에 세 시간 정도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계신데, 일을 좀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망설였지만 일이 이렇게 풀리는 것에는 또 어떤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승낙을 했다. 그렇게 나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다.

내 두 발로 움직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해야겠고, 그 일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램으로 찾아낸 직업이었다. 이 일 하나에만 올인할 마음은 아니다. 지금도 또 다른 JOB을 준비 중이고 그 후로도 계획은 몇 가지가 더 있다. 하지만 나는 요양보호사 일도 찬찬히 경력을 쌓고 싶다. 그래서 더 훗날에는 노인인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사는 마을을 운영하고 싶은 바램이 있다. 그래서 지금 무척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전투적이다.

나랏돈으로 지원받아 돌봄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들은 우리와 세대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당신 집에 돌봄 서비스를 하러 오는 사람을 가사도우미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의 일상생활을 돕는 사람이다. 거동이 불편한 분도 최대한 잔존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게 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으면 걷게 하고 운동을 하거나 함께 산책을 한다. 어디에도 드러내지 못하느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말벗도 되어 드린다. 비밀유지는 직업윤리에 속하는 부분이다.

병원 갈 때 동행하고, 시장 장보기를 대신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이 불편하지 않도록 어르신이 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처리해 드린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해드릴 수도 있고 팔에 힘이 없어 못하는 집안 일을 대신해 드릴 수는 있다. 그러나 분명한 선이 있다. 어르신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만 도와드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요양보호사 업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도 수업 시간에 강사로부터 들었던 당부의 이야기를 현실로 맞딱드리고 있다.

아들의 옷을 세탁해 달라, 손녀의 방을 청소해 달라, 손님이 오는데 대접할 음식을 해 달라 등등 파출부 용역을 불러야 할 부분까지도 요구하는 경우가 생긴다.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어렵고 전부 수용하기는 버겁다. 이럴 때는 사회복지사가 중간에서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어르신들은 금방 까먹는다. 시간이 지나 라포가 형성되고 친해질 수록 원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집요해 진다.

일상에 낛이 없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삶에 낙담하는 어르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해 드릴 수 있다. 하지만 배려가 권리인 줄 착각하고 결국은 서로가 힘들어지게 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많이 듣고 보았다.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은 살아봤으나 재미가 없었다.

남은 시간은 남도 위하고 남과 함께 사는 삶을 택하겠다고 마음먹고 실천하려 하고 있으나 매번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 타인의 삶에 관여할 마음은 여전히 없지만 도움을 원하는 이들에게 나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로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나라는 존재 이유가 보다 가치있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요양보호사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두렵다. 인간에게 느꼈던 한계를 또다시 맞딱뜨리게 되면 나는 또 어떤 감정적 변화를 일으킬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바닥을 보고 느꼈던 그 혐오를, 이 일을 하면서 다시 느끼고 경험하게 된다면 나는 또 어떻게 돌변하게 될까 걱정도 된다. 부디 예전같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한 뼘은 성장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자신은 없다.

마지막으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분들이 대상자의 무례함으로 상처받고 이 업을 버리지 않게 서로 예의를 지키는 분위기가 하루 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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