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되게 표현하자면 격에 맞게, 격이 맞는, 격을 맞춰서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환경에서 제 3자가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법한 이력을 갖추고 어디에 가서도 꿀리지 않는 나만의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고지식한 생각과 자존심때문에 기를 쓰고 자수성가를 해 보겠다고 악다구니를 썼었다.
하지만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시기, 질투로 인해 혼자서 가는 사람을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것도 세상이다. 결국 어울려야 하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독불장군처럼 살려고 하면 점점 스스로만 고립되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하나 둘 내려놓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좀 더 수월해 진다. 예전같지 않은 체력 때문에, 건강 때문에 등등 나의 처지와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생기고 객관화를 통해 냉정하게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그러면 조금씩 나를 놓게 된다. 고집스럽게 지키려 했던 어떤 것에 의미를 다시 평가해 보고 정말 중요한 것인지 따져서 버릴 것은 버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정말 '이것만은 포기 못해' 라는 것 한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허허실실 할 수 있게 된다.
나이가 들었지만 내려놓을 마음이 없는 사람을 만나 잠시 대화를 해보고 나니 내려놓는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 깨닫게 되었다.
건강하던 시절에 부여잡고 있던 것을 놓지 못하고 모두 가져가려고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몸이 점점 더 아프고 모습은 더 추레해 지고 있는데 그 원인을 모두 병 때문이라고 핑계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대장암 수술을 받았고 추적검사를 하는 기간 중에 유방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었다. 다행히 1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아 가볍게 떼어내면 될 정도의 수준이라며 큰 걱정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년 전부터 대상포진으로 두피가 아픈 것이 골치라고 했다. 두개골을 4분의 1로 나눈 부분 중 우측 윗부분이 아파오면 정신이 혼미해 진다고 했다. 그리고 무척 기분나쁜 통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머릿카락이 빠져서 모자를 써야 하고 살이 빠지고 기력이 쇠약해져서 넘어질까봐 외출 시에는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 이웃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외출을 극도로 자제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질없는 것을 부여잡고 있는 것 같았다.
형편없이 추레한 모습으로 살아가느니 더 추레해지기 전에 죽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나고 가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물론 물리적인 방법은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곧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은 당장 아프니 곧 죽을 것 같지만 고비를 지나고 나면 연명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다. 그 일이 나에게 닥치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다. 그렇다면 가능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비싼 음식, 고급 영양제, 귀한 약을 먹으며 연명을 하라는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켜나가면서 내 발로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체력으로 생활을 하도록 애쓰는 것이 의미없는 삶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장루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체력을 회복해서 재발을 예방하려고 하는 것은 구차하게 생명을 구걸하는 일이 아니다.
이웃에게 병이 알려져 동정을 받더라도 그 삶이 비참해 지는 것은 아니다.
죽을 병에 걸렸으면 살려달라고 매달려 보는 것도 구차한 일은 아니다.
구걸할 수 있고 구차해 질 수 있다. 다만 건강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들 모르게 투병생활 끝내고 다시 예전의 모습이 되어서 짠~하고 나타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한 번 아프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물론 더 건강해 질 수 있다. 그러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매일 운동을 하고 생각을 바꾸고 생활이 변해야 한다. 스스로는 변할 마음이 없으면서 빨리 병만 나았으면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서 도움을 주려 해도 받지 않는다.
나도 잠시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결국 나만 손해다.
오롯이 한가지 일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타인의 삶이지만 잠시 개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나도 바쁜 상황이다. 올 해는 정말 나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시기이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 때는 나도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나도 꾸준히 개발하고 발전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며 나와의 인연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