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감응되다

괴발자 모드 속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 강릉 완결

by 돌뭉치

이번 강릉 여행은 대성공이다. 불볕더위를 체감할 수 없었고 음식도 다 맛있었다. 이동 수단으로 이용한 KTX와 카카오T는 자차처럼 편안했다. 우선 KTX는 안락했다. 여행 마감 글을 열차 안에서 써도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3분 지연 출발과 폭염 중 선로 이탈을 걱정해서 서행한다는 기관사의 안내마저 친절하게 느껴졌다. 카카오T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호출하면, 1분 이내 잡힌다. 한 번은 예약 없이 빈 차가 앞에 섰길래 그냥 탔다. 기사님께서는 여기선 손만 들면 택시가 선다면서, 조그만 동네라 승차 거부가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손 들고 택시 잡는 게 당연했는데, 우리는 빠르게 잊었다. 정겨운 동네 강릉이 좋다.


마지막 날이어서 아침부터 강릉 바다를 지켜봤다. 태양에 비친 바다가 에메랄드빛을 뿜었다. 동해도 이런 색을 발산하다니 신기했다. 분명 어제 본 바다색과는 달랐다. 가는 날까지 날씨 기운을 충만히 받는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모든 근심은 온도에 집중되었다. 뚜벅이족이어서 호텔 밖을 나가기가 두려웠으나, 동해까지 가서 숙소에만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과 달리 바닷가는 무덥지 않았다. 해만 뜨겁고 그늘을 찾으면 금세 시원해졌다. 서울에서처럼 후덥지근한 습기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여름에 와서 다행이라 여겨질 만큼 바닷바람이 좋았다. 호텔 앞 소나무 숲과 경문 해변은 나에게 근사한 추억을 선사했다. 전국에 가야 할 곳이 많아서 한 번 온 곳은 재방문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이곳은 또 오고 싶다. 서늘해질 때 와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더 멋질 것 같다. 자연도 좋고 잠자리와 식사 모두 훌륭하다.


인심도 좋다. 가장 먼저 만나는 택시 기사님은 다들 친절하다. 목적지를 말하면 추가 정보까지 얹어서 데려다준다. 여기가 맛있다느니, 거기가 구경하기 좋다느니 말을 전해준다. 돌아가는 날 강릉역을 찾으면서 헤맸을 때도 자전거에 올라탄 행인이 이쪽으로 가면 금방이라고 자상하게 알려줬다. 평소에 나는 사람들이 길을 물으면 왜 앱에서 검색하지 않는지 속으로 불평하며 대답한다. 소시민인 나와 대시민은 강릉 주민은 확실히 다르다. 호텔 사람도 그렇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문을 먼저 열거나 잡아준다. 여행하러 와서 안 그래도 들뜬 기분에 감동까지 쌓였다. 엄마가 혼자 바닷가 산책하러 나갔을 때도 길을 헤매자 어떤 분이 대동해서 안내해 줬다고 했다. 매시간 감심을 주는 강릉이다.


여행의 성패는 숙소와 음식에 달려있다. 바닷가 앞에 자리 잡은 호텔은 깨끗하고 친절했다. 주말을 끼지 않아 목·금·토를 묵어서, 아니면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북적이지 않았다. 규모가 커서 웬만한 인원은 수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조식과 석식이 포함된 패키지여서 하루 두 번 제일 높은 16층으로 향했다. 메뉴는 여느 호텔 뷔페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중지 두 개를 합친 크기의 통통한 새우튀김이 인상 깊었다. 생맥주와 함께 먹으면 딱 맞다. 봉인되었던 식욕이 폭발했다. 아침은 별미 크림치즈에 발라 먹는 베이글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여행 가면 원래 삼시 세끼를 고민해야 하는데, 점심만 해결하면 되니 여행 가이드로서 스트레스도 덜했다. 다음번에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해야겠다.


엄마와 코타키나발루를 시작으로 제천, 강릉, 프랑스, 호주, 다시 강릉을 다녀왔다. 본격적으로 호텔을 찾기 시작한 건 프랑스다. 그전까지는 인원이 많아 콘도를 선호했다. 방이 분리된 호텔보다는 다 같이 모이기에 콘도가 적합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숙소는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비좁았고 호주는 오페라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방임에도 동생네 땅집에 비할 바 없었다. 엄마는 자주 코타키나발루 숙소의 추억을 소환하며 그때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런데 이번에 바뀔 것 같다. 코타키나발루에 버금갈 만큼 이곳이 마음에 든다 했다. 심지어 옹심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최오한단다. 엄마가 호캉스 매력에 푹 빠졌다. 가을에도 다시 와도 좋겠다 하니, 긴 추석 연휴를 대비해 나는 또 호텔 예약을 할 것 같다. 효녀는 아닌데, 툴툴거리면서 엄마와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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