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호씨네 수상한 먼지

괴발자 모드 속 쉰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집안에 머리카락 한 올도 가만두지 않는다. 눈에 띄면 바로 줍는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는 핸드용 청소기를 사줬다. 그러니 먼지를 발견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할 때, 단출한 가구지만 소파를 한쪽으로 밀어 원래 소파가 있던 바닥까지 닦는다. 침대는 옮길 수 없어 그냥 두지만, 대신 밀대를 깊숙이 넣어 머리카락을 끄집어낸다. 바닥과 침대 사이 틈이 좁아, 로봇청소기가 그 밑으로 못 들어가는 걸 아쉬워한다. 벽에 기댄 멋내기용 액자와 탁자에 놓인 각종 소품까지 수건으로 닦아낸다. 그래서 우리 집은 머리털, 먼지 한 톨도 없다.


미호씨 집은 정반대다. 그녀는 쓸고 닦는 건 잘하지만, 정리 정돈에 취약하다. 물건은 손에 닿기 쉬워야 한다며 죄다 늘어놓는다. 나는 20평대, 그녀는 30평대에 산다. 둘 다 1인 가구지만, 세간의 양이 다르다. 애당초 혼자 산 우리 집과 달리, 그녀는 네 명에서 차츰 줄어 단독 세대주가 되었다. 그래서 네 사람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다. 그녀는 이들의 자취를 움켜쥐고 산다. 아무리 소식을 잘해도 절대적인 살림양 때문에 먼지가 쌓일 수밖에 없다. 소탈한 그녀 성격도 한몫한다. 결벽증을 가진 나도 미호씨네 가면 무장 해제된다. 우리 집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먼지를 찾지만, 그녀 집에서는 눈을 감는다. 그녀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의 팔 할은 내 지분이다.


그녀 집의 역사를 살펴본다. 상은씨와 결혼해서 옹총이와 망총이 두 딸을 길러냈다. 상은씨와 망총이도 정리에 무심하니 옹총이가 별나기는 하다. 옹총이도 자립 전까진 이 집 피를 물려받은 듯했으나, 본성을 감추지 못하고 엄청난 깔끔을 자랑했다. 상은씨는 집안일에 관심이 없었다. 일언반구 없이 미호씨의 결정을 따랐다. 그래서 쓸고 닦기를 잘해도 정돈 못 하는 그녀에게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 눈에 거슬릴 게 없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다. 상은씨는 기억을 잃는 병을 앓다 갔다. 치매는 병세가 서서히 진행되다 죽음을 앞두고는 속도가 빨라진다. 미호씨도 그를 간병하느라 집안일을 손에서 놓았다. 집안에 먼지가 쌓였다. 그래도 옹총이가 집에 올 때는 청소했다. 금세 상은씨는 방을 어질렀다.


망총이도 청소에 관심이 없다. 정리 정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미적 감각이 있어 집을 예쁘게 꾸며놓고 산다. 드문드문 놓인 피규어와 사진첩, 화병 등이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녀는 호주에 산다. 망총이 땅집은 미호씨네처럼 정리가 안 된 듯하면서도 실내가 멋스럽다. 특히, 온 식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시루 때문에 사방에 개털이 굴러다닌다. 시루는 흰색, 갈색, 검정털이 섞여 있다. 소파에 앉고 나면 옷은 물론, 핸드폰 케이스 사이에도 개털이 낀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을 때같이 떼지 않는다. 어차피 떼어내도 금방 붙는다. 시루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여기저기 조카 털이 묻어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캐리어를 비워 빨래하다 하얀 털을 발견했을 때 시루가 따라온 것 마냥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4인 가구에서 처음 독립한 사람은 망총이다. 제짝을 붙여 호주로 갔다. 둘이 되어 나가서 안심했다. 그녀의 버럭버럭하는 성질을 걱정했으나, 되돌아오기에는 비행깃값이 비싸서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다음은 옹총이가 나갔다. 원래 살던 집에서 이사해야 했는데, 회사와 거리가 멀어 강제로 분리되었다. 미호씨는 만 가지 걱정을 하며 그녀를 내보냈다. 그러한 우려를 불식하고자 옹총이는 알뜰히 잘 살았다. 마지막은 상은씨다. 요양원을 잠시 들렀다 급히 우주로 갔다. 젊어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 그의 성미를 드러내듯 죽음도 서둘렀다. 이제 미호씨 집에는 그녀 혼자 남았다. 여전히 늘어놓고 산다. 그녀가 주는 정만큼이나 옥내에는 먼지가 살포시 앉았다. 청소 안 한다는 게 아니다. 그녀가 옹총이네 들러 청소해 준 날에는 집안 구석구석 향기가 넘친다. 그렇다면 그녀 집의 먼지는 상은씨가 왔다 간 자국일까. 시루처럼 털이 풍족하지 않은 상은씨는 먼지로써 그녀를 흔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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