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쉰한 번째 이야기, 거대한 전환 2부
《거대한 전환》 책 제목을 인제야 이해했다. 원서는 《The Great Transformation》이다. 지난주만 해도 본문에 비해 제목이 가지는 거창성과 화려함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번역 때문인지 원문이 그런지, 비문이 많고 꾸밈말도 무수하다고 불평했다. 초기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문체가 한 페이지 가득 담겼다며 투정 부렸다. 문제는 본인에게 있었으나,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저자를 탓했다. 대단한 책이다. 같은 챕터를 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으니, 눈이 뜨인다. 칼 폴라니는 자유주의 경제에서 고통받는 노동자 계급이 그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정치, 경제, 역사적인 배경에서 다각도로 조망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얼마 전에도 우치다 다쓰루의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며 내 문해력은 멀었다고 느꼈는데, 한참 요원하다. 글을 쓸수록 나의 무지를 체감한다. 반성하는 마음을 안고 11장부터 15장까지 정리했다.
백 년 동안 현대 사회의 흐름을 지배하던 운동은 팽창하는 시장과 이를 막아서는 편으로 이중화한다. 원래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 체제 창출에 몰두했던 사회 조직 원리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직면하면서, 종교 색채를 띤 자유주의 교리로 변모하고 열렬한 전투력을 갖게 된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유방임 신봉자 집단은 이런 반대 운동을 개인주의에서 집단주의, 자유주의에서 반자유주의, 자유방임에서 개입주의적 형태로 바뀌었다고 맹비난했다. 게다가 농업인, 공장주, 노동조합 운동가들의 못된 이기주의가 보호주의를 조장하고 마르크스주의 정당도 분파 집단을 기반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사전 협의나 집단 모의 없이도 자연스럽게 사회를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들어서게 된다. 시장원리에 따라 인간과 자연, 생산 조직이 조직되면서 재난에 봉착함에 따라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에 대항한 보호주의 운동이 주류가 된다. 심지어 자유주의자조차 본인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일정 부분 정부의 개입을 요구했다.
인간과 자연을 지키기 위한 투쟁 과정을 살펴본다. 우선, 노동을 인간의 다른 활동으로부터 떼어내어 시장 법칙에 종속시키면, 모든 유기적 존재는 소멸한다. 대신 그 자리에 원자적 개인주의의 사회 조직이 들어선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자는 한결같이 어떤 종류의 개입도 반대했다. 특히, 오언주의는 자본주의를 우회하여 인간에게 일을 시키는 주체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어야 한다고 외쳤다. 협동 혹은 “단결”의 원리를 따르기만 하면 개인의 자유나 사회적 연대 없이도 기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를 경제와 정치 영역으로 분리를 허용하지 않아 어떤 정치적 조직 구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반면, 차티스트 운동은 헌법을 이용하여 정부의 영향력을 요구한 정치 활동이다. 상품으로 전락한 노동 시장 환경 아래서는 사회 보호 운동이 당연히 그런 제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인간적 본성을 지켜낼 수 있도록 임금, 노동조건, 각종 표준과 규제를 두는 한도 내에서만 작동이 허용되었다.
다음, 자연의 한 요소인 토지는 인간의 여러 제도와 견고히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토지와 노동은 단절되지 않았고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국가 또한 단단히 묶여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우위를 가진 토지 기반 세력의 이해는 그렇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회와 각종 계급은 거대한 전환을 맞게 된다. 시장경제를 통한 상호 의존이 얼마나 큰 위험을 내포하는지 깨달았으며 어느 국면에서는 파시즘의 발광으로 나타났다. 시장경제에 대한 노동계급과 농민의 대응은 모두 보호주의라는 결과로 귀결된다. 전자는 입법이나 공장법, 후자는 보호 과제나 토지 관련법 형태로 말이다. 차이점은 토지에 관련된 사회 계층이 시장 체제와 타협안을 지향했으나, 넓은 의미의 노동계급은 적극적으로 반기를 드는 방향으로 향했다. 결국 보호 운동이라는 공통된 목표에도 불구하고, 노동하는 인간과 토지를 가진 인간은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지고 거대한 전환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