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인물의 탄생

괴발자 모드 속 쉰두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소설에서 중요 요소는 인물과 사건이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는 각각 박수무당 ‘문수’와 영화감독 골수팬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근래 읽었던 소설 중 제일 신선했다. 전자에서는 생소한 글감을 친절히 풀어냈다. 후자에서는 현실에 있을법한 소재는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독자가 고민하게 했다. 무당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라 한다. 저자는 소설의 인물과 현실의 관객 사이에서 무엇을 중개하려 했을까. 두 작품의 주인공 속으로 빠져들어 본다.


《혼모노》에는 신빨이 다 한 50대 남자 무당이 등장한다. 30대 여성작가가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어 내 이야기인 듯 자연스럽게 표현한 글에 놀랐다. 한때 장수 할멈의 혼을 받아 유명세를 떨쳤던 그였지만, 어느 순간 맞은편에 이사 온 신애기에게 할멈을 뺏기고 자신은 가짜 무당이 된다. 할멈을 모시는 내내 음식 하나에도 성심을 다한 본인과 달리, 신내림을 받은 후에도 아무렇게나 생활하는 그녀가 못마땅하다. 이러한 ‘나’의 뜻과 달리 작가는 곳곳에 신참 무당을 부러워해서 미행까지 감행하는 그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짝퉁 주제에 굿판을 하려던 그의 계획은 수포가 되었다. 그럼에도 기어코 굿판에 등장해서 신애기와 대적한다. 무모한 결정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절벽에 선 인간의 유일한 선택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작두를 타면서 피를 뚝뚝 흘리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동정이 우세했다. 두 번째 읽자, 할멈과 함께할 때가 진짜인지, 완벽히 혼자가 된 지금이 진짜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 신기를 잃고 가짜 무당은 되었지만, 그는 지금부터 온전히 인생의 주도권을 쥐지 않았을까.


‘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어 이름도 소개되지 않는다. 《혼모노》를 먼저 읽고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보아서 평범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녀는 아역 배우에게 비윤리적으로 행동한 김곤 감독을 맹신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실제로 있을법한 일이라 공감되었다. 유명인들의 추문과 팬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매스컴에서 종종 접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상도 연예인, 정치인, 종교인들로 다양하다. 그녀의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진심 어린 사과에 팬심은 식어버린다. 남편을 속이면서까지 지키려던 그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은 믿기 싫은 진짜가 밝혀지자 돌아선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맥이 풀렸다. 주인공이 되어 갈등하던 팽팽한 고무줄이 순식간에 끊겨버린 것이다. 재차 생각하자 개안했다. 그녀에게 진짜는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를 맹수라고 좋아하며 만질 때처럼 말이다.


전혀 다른 두 작품이었지만, 인물을 탐구하면서 공통된 메시지를 찾았다. 문수는 실상이 아닌 허를 쫓고 ‘나’도 스스로 믿고 싶은 것에 주력한다. 어쩌면 현재를 사는 우리가 매일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서 일시 가짜를 내세웠다. 모순되게도 이런 이야기는 진짜처럼 읽힌다. 그냥 써도 명작이 나오는 성 작가와 달리,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밤잠을 설쳐야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만들 수 있다. 재능이 없어서 엉덩이로 버틴다. 덕분에 어깨 통증으로 한의원도 자주 간다. 원래도 코딩 때문에 어깨가 자주 뭉치는데, 이제는 회사 집 할 것 없이 목덜미와 어깨 사이 기생하는 통증과 같이 산다. 내 글의 혼모노는 무엇일까. 성해나 작가의 글은 읽을 때보다 책을 덮고 나서 여운이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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