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쉰세 번째 이야기
엄마 집에 가기 위해서는 전철역에 내려서 한참 걸어야 한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걷다 보면 제멋대로 각진 경사만큼이나 다양한 생물체와 마주친다. 오늘 글은 그 생물 군상에 대한 관찰기다.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인간부터 시작한다. 차족과 보행족, 근래 등장한 신인종으로 나뉜다. 태초에 신은 공평하게 차족에게는 차도를, 보행족에게는 인도를 하사했다. 차도가 두세 배 이상 넓으니 공평하지는 않은 시작이다. 여기 인도에 자전거족과 킥보드족이 나타났다. 심지어 속도를 늦추지 않고 보행족을 향해 질주하다 경적을 발사하는 자전거족도 있다. 이때 자신의 행로를 고집하는 보행족은 욕먹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갈수록 보행족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횡단보도는 오토바이족과 나눠 쓴 지 오래다. 얼마 안 남은 인도마저 자전거, 킥보드족과 함께해야 한단 말인가. 부익부 빈익빈,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킹 머튼은 성경 마태복음에서 차용해서 ‘마태 효과’라 명명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보행족은 있던 것도 뺏기게 생겼다.
다음은 까치다. 도서관을 다녀오는 한적한 길가에서 총총 뛰고 있는 까치를 만났다. 까치는 날지 않을 때 엇박자로 움직인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뛰는 이유가 정박으로 못 걸어서인지, 급한 성격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얼마 전 기사에서 ChatGPT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바뀌었다는 내용을 봤다. 기계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해야 정확한 답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그 기계가 동물의 말도 해독하도록 발전되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오면 제일 먼저 호주에 있는 견조카 시루에게 묻고 싶다. 왜 널찍한 거실에서 소파 틈새에 끼여서 자는지, 몸은 왜 비비 꼬는지, 왜 도그파크만 가면 똥을 묻히고 오는지 궁금한 게 참 많다. ChatGPT가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온 것처럼 불식간에 그날이 올지 모르니 시루에게 바라는 바를 적어봤다.
“시루야, 널 볼 때마다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가족이 된 지 햇수로 3년째니까 벌써 다 컸구나. 오늘은 엄마가 준 염소 뿔을 두 손으로 꽉 쥐고 먹더라. 곧 서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어. 가끔 두 손을 들고 몸을 일으키기도 하잖아. 시루가 빨리 사람 말을 배울지 아니면 네 말을 해석해 줄 장비가 먼저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어서 그날이 오면 좋겠다. 초점 잃은 눈으로 멍때릴 때, 소파에 매달려 쉴 때, 쏘이면서도 왜 벌을 쫓아다니는지 궁금해. 얼른 대화해서 돼지 귀랑 염소 뿔 중에 최애 간식 알게 되면 얼른 사줄게.”
빗줄기가 지나간 후 날이 쨍해지면 길가에 지렁이 사체가 발견된다. 사실 지렁이보다 우글거리는 개미 때문에 눈길이 더 간다. 예전 같으면 혼비백산했겠지만, 지금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돌아간다. 개미보다 몇 배 큰 지렁이가 개미 단체에 함락당했다. 지렁이가 죽어서 개미가 몰려든 것인지 개미가 죽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앞서 말한 기술이 발달해서 개미의 말은 들어볼 기회라도 있겠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는 항상 산자에 의해 쓰인다. 망자의 말을 전달하는 과학기술도 필요하다. 그래야 공평하다.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살다가 위로 올라가 기껏 2, 3주를 살고 생을 마감한다. 시끄럽게 우는 이유는 수컷 매미가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특히, 수컷은 몸 안이 진공관과 공명실로 이뤄졌을 만큼 소리에 진심이다. 그렇게 짝을 만나면 암컷 매미가 나무껍질에 알을 낳고 세상을 떠난다. 여름만 되면 맴맴 소리를 불평하며 창문 닫고 에어컨으로 버텼는데, 길거리에는 방음벽이 없다. 참고 걸어야 한다. 매미가 불쌍하다. 소란스럽다고 구박할 게 아니다. 회사에서도 종일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매미처럼 생각해야겠다. 분명 절실한 사연이 있을 거다.
자전거족과 킥보드족, 까치, 시루, 지렁이, 개미, 매미 중 누구의 사연이 누가 가장 절실할까. 나는 시간차를 두고 이들을 만났지만,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사연을 풀어보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사연 없는 생물체가 없고 난 여전히 그들의 본심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