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에게 독자란

괴발자 모드 속 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 1부

by 돌뭉치

레비나스를 이해하려고 책 세 권을 읽었다. 김상록 교수의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을 시작으로 안상헌 작가의 《미치게 친절한 철학》, 원전인 《시간과 타자》까지다. 첫 번째 책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를 나의 무지한 철학 기초로 보고 이전 책보다 두꺼운 책을 펼쳤으나 효과가 없었다. 정리 글을 쓰기에 앞서 해설서를 찾다 원전보다 세 배 이상의 두께에 포기하고 겁 없이 원작을 집어 들었다. 역시 해설서가 두툼한 데는 까닭이 있다. 레비나는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물음을 일으키고자 난해하게 썼다고 한다. 잘 쓴 글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이라 배웠다. 하물며 사상 자체도 심오한데 스스로 해석하기 어려운 글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지 투정 부려보지만, 프랑스 철학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지 않은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자신을 탓하며 그의 숨은 뜻을 살피고자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존재’, ‘타자’, ‘향유’이다. 이 중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향유’이다. 레비나스는 《시간과 타자》에서 향유(Jousissance)에 대해 즐김과 누림, 세계에서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존재 방식이라 했다. 향유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의 원천인 사물은 만족하며 체험할 수 있는 대상이다. 가령, 나를 둘러싼 공기와 물, 햇볕을 즐길 때야 비로소 주체성의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현재의 만족과 내일의 불안을 같이 느낄 수 있다. 고대 프랑스어 Joissance에서 유래한 Jousissance는 즐거움, 기쁨, 유쾌하다는 뜻이다. 저자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세 가지 낱말을 조합했을 때 전체보다는 개인을 중심으로 타인의 존재도 인지하면서 주변의 즐거움을 만끽하자는 가치관을 추구하지 않았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가 소유한 고통 그 자체에 관심 갖기를 원했다. 그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보면 남을 향한 자애로운 태도가 섣불리 납득되지는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5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냈고 리투아니아의 가족 모두를 홀로코스트 희생자로 잃었다. 보통의 사람은 세상을 원망하면서 생을 보내겠지만 그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기존의 학문이 탐구하는 존재의 본질 대신 인간이 타인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나’에 갇힌 채로는 어떤 성공도 한계가 있다.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 조성이 불가하고 내면의 공허함마저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이미 가치 있으며 ‘자기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다. ‘타자’에 대해 사고할수록 동양철학과 비슷한 점이 많이 발견되었다. 제대로 해석할 것일까. 그래서 해설서를 한 권 더 찾아들었다.


우치다다쓰루의 레비나스 사랑은 유명하다.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으나, 스승으로부터 학문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치다다쓰루의 책을 택했다가 그만 레비나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동일 저자가 쓴 글쓰기 책만 가져왔다. 까다로운 스승의 글을 해독한 작가라면 분명 대단한 필력을 가졌을 것이다. 레비나스가 난삽하게 쓰는 게 목적이었다면 적연히 성공했다. 처음 그의 사상을 접했을 때보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이 더 골치 아프다. 학문적으로는 타자의 고통을 공감했으면서 정작 독자 처지에서는 헤아리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그는 ‘잠’을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영역이라 했다. 잠을 통해 고유한 나의 활동을 충분히 누리고 자기 존재를 실감할 수 있다. 충분히 향유했을 때 타자와의 환대도 가능해진다. 레비나스를 후대하지 못한 이유가 불면 때문은 아닌지 궁리하다 숙면하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무지하고 좁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타자를 담는 철학 그릇을 더 키워야겠다.




레비나스 씨,

미안합니다. 저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고 당신 글쓰기 실력을 탓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그렇게 우치다 타츠루 씨의 책을 세 권쯤 읽으니 제 과오를 깨닫게 되더군요. 저는 독서 폐활량이 부족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해 안 되는 대목에 이르면 답답하다고 작가를 탓했습니다. 그리고선 이해되는 구절만 골라서 집어먹습니다. 당신을 철학적 스승으로 여기는 우치다 타츠루 씨도 저처럼 당신 책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그는 인내를 가지고 알기 위해 번역했다 했습니다. 일단 사과합니다. 그래도 바로 시작하기는 어렵고 다른 책으로 산보 좀 하다 다시 당신을 만나보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차 산업혁명과 스피넘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