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일흔네 번째 이야기
꼬박 4일만 버티면 푹 쉰다. 덕분에 이번 주말에는 여유 있게 넷플릭스를 틀었다. 채널을 검색하다 눈이 호강할 수 있는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 멈췄다. AI가 다 하는 세상에 사람의 통역이라니, 처음 전개는 올드하다고 생각했다. 1화는 일본의 고윤정이 예뻐서 봤다.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러다가 김선호 아니, 주호진 씨에게 빠졌다. 기계가 통역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이 분명히 있다. “던지진 못해도 나 돌멩이 쥐고 있다. 그렇게 알려주는 건 해도 되지 않나. 최소한 함부로 굴지 못하게. 말하고 싶어지면 해요. 그때 제대로 통역해 줄게.” 나도 그 같은 통역사가 필요하다.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나. 표정으로는 양 볼이 달아오름을 느끼면서도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참 많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극 내 성향인 나는 평소에 대화를 원활히 진행하지 못한다. 가장 취약한 부분은 스몰 토크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못해 낯선 사람과 마주할 때는 침묵을 고수한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다가오기 전까지 먼저 말을 건넨 적이 없고 소개팅 나가서도 질문에 답만 했다. 그래도 요즘은 회의 시간에 의사를 표명하는 걸 보면 소소한 발전을 했다. 월급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하지만, 여전히 참는 말이 더 많았다. 내 옆에 주호진 씨 같은 통역사가 있다면 조금 더 후련해질까.
5화에서는 차무희 씨가 네잎클로버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 전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코팅된 클로버를 나눠주는 행사를 했었다. 덕분에 힘들게 찾지 않아도 갖게 된 네잎클로버. 돌연변이인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했었는데, 돌연변이가 아니라 일시적인 기형 현상이라 했다. 이 열성 유전자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허리 숙여 찾게 되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위상이 바뀌는 대상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백조가 되는 미운 오리 새끼가 있고 내 주변에는 전자레인지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가족과 기거 중인 금성 전자레인지는 회사 로고가 바뀌고 버튼에서 터치식으로 디자인이 바뀔 때도 고장 한번 없이 잘 동작하고 있다. 무려 40년 넘게 우리 집 주방을 차지하고 있는 금성 전자레인지, LG 관계자가 얼른 이 글을 보고 이 가전제품을 모셔가기를, 그래서 그 가치가 급상승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올림픽이 시작한 이후로는 드라마 보기가 뜸해졌다. 아무래도 최고의 감동은 각본 없는 경기가 비할 데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호진 씨가 기억에서 가물거렸다. 차무희 씨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그녀를 도와주는 주호진 씨, 혼자 사는 내게 그의 존재감은 컸다. 그동안 미뤄뒀던 운전을 올봄에는 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주입하고 있다. 강제로 걷기 운동을 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이점을 들이밀면서 여태껏 버텼었는데,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 운전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세상 낙천적인 엄마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같이 외출할 때마다 허리와 무릎에 복대를 차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운전하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었다. 운전을 꺼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도로 위 킥보드의 출현과 사고가 났을 때 전화할 상대의 부재. 주호진 씨 같은 남자 친구가 있다면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다.
작년 이맘때쯤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 한껏 기대를 품고 그 당시의 감정을 생생하게 남기기 위해 만남 전 카페에서 글도 한 편 썼었다. 소개팅은 폭망했고 나는 그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다음 주에도 소개팅을 앞두고 있다. 자고로 새 학기 학생은 학교에 가고 올드미스는 소개팅하러 간다. 이번에는 제발 주호진 씨 같은 상대가 나타났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카카오톡으로 먼저 만나본 상대는 그런 행운을 선사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써놓은 글을 묵혀 버릴까 봐 오늘은 먼저 발행했다. 인생은 희로애락이다. 희(喜)와 락(樂)만 있는 글은 흥미롭지 않다. 원래 사람들은 힘들 때, 위로받고 싶거나 본인보다 더 한 상황이 있다는 걸 위안 삼기 위해 글을 읽는다. 미래의 그가 말이라도 잘 통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외모에 대한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내게 주호진 씨는 유니콘 같은 인물로 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