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일흔여섯 번째 이야기
※ 주의: 《만약에 우리》 감상평이어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 왜 헤어졌지?”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 영화 포스터에 적힌 문구다. 나도 궁금한 저 말을 문가영이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별을 통보받고 나면 생각한다. 왜 헤어졌을까. 헤어짐을 행한 당사자는 이유를 알지만, 헤어짐을 당한 당사자는 모른다. 상대에 대한 배려거나 김애란 작가의 〈숲속 작은 집〉의 주희처럼 마지막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으려고 상대방도 모르는 나만의 친절을 베풀며 이별의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영화를 볼 줄 아는 친구의 추천으로 《만약에 우리》를 통해 긴 연휴의 포문을 열었다. 솔로 생활이 길어지면서 멜로보다는 이별 영화가 나았다.
처음은 역시나 상투적이었다. 운명처럼 버스 옆자리에 앉아서 고향으로 향하다가 산사태로 길이 막히자, 은호는 정원을 시내까지 데려다줬다. 정원이 보육원에서 자랐음을 알고 마음이 쓰였는지 은호는 그녀에게 되돌아가면서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몇 년을 친한 친구로 지내다 정원의 이별을 계기로 은호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됐다. 심장을 꺼내줄 것처럼 뜨겁던 그들의 사랑도 현실적인 벽에 막혀서 차츰 멀어졌다. 게임 창작에 몰두하던 은호는 게임 폐인이 되고 건축사가 꿈인 정원도 모델하우스 아르바이트생에서 멈춰버렸다. 전반부까지 시종일관 웃던 그들의 미소는 어느 순간 실종되었고 꼭 붙어있던 그들도 원룸 안의 양 끝단으로 벌어졌다. 비단 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연인이 삼 년까지는 뜨겁다가 점점 식는다. 아직도 장기간 연애를 결혼으로 마침표 찍는 커플이 신기하다. 어떤 에너지가 남아있어 같이 살기로 결심했을까.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맞을까.
영화 포스터가 말해주듯 그들은 결국 헤어진다. 정원이 함께 살던 집을 나가자, 은호가 전력 질주해 따라잡으면서도 끝내 붙잡지 않았다. 십 년 후 다시 만난 은호는 그때 본인이 잡았다면 정원이 떠나지 않았을지 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렇다고 했다가, 결국 헤어졌을 거라고 답했다.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친구에게 물었다. 왜 남자들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하다가 끝내 놓아 버리는 쪽도 남자냐고. 그녀는 아마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랬을 거라고 말했다. 사랑한다면 붙들어야 하지 않는지 반문하면서 친구의 말도 담아뒀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는 동의한다. 이별 후에 은호는 ‘백억’ 게임 개발자, 정원은 건축사가 되었다. 인생에 큰 위기를 닥쳐야 사람들은 정신 차리고 본업에 집중한다. 나도 아빠 돌아가시고 이년을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살다 서서히 빠져나왔다. 최악으로 굴러 떨어지고 난 뒤 올라오려다가 미끄러지고 다시 떨어지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상처가 아물 때쯤 몸과 마음이 단단해진다.
나는 아직도 헤어진 이유를 모른다. 시간 때문인지, 마음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인연이 아니었을까.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래서 귀를 닫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정원의 말처럼 결국 헤어졌을 거라는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은호 아버지가 정원에게 쓴 편지의 글귀다. “인연이란 게 잘되면 좋지만,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쉽지 않지. 사람의 마음도, 삶도 변할 수밖에. 그래도 괜찮아. 괜찮단다.” 그래, 괜찮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경험을 했고 감정을 얻었으며 더 늦기 전에 최악에서 벗어나는 요령을 찾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듣고도 흘려버린 말들을 이제 와서 하고 있다. 이삼 년이 지나서. 우리는 빛났고 아름다웠다. 만약에 우리, 내가 같이 가자고 했다면 바뀌었을까. 아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기에 또 다른 전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잘했고 그도 잘했다. 우리는 모두 컸다. 이 영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