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의 세계관

괴발자 모드 속 일흔일곱 번째 이야기

by 돌뭉치

※ 주의: 《비틀쥬스》 감상평이어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가 원작인 《비틀쥬스》를 보았다. 일주일 넘는 긴 연휴 동안 소설 집필을 계획했음에도 한자도 못 쓰고 있던 나는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뮤지컬을 보기로 했다. 수십 편의 공연 중 상위 순위에 노출된 작품을 골랐다. 골라놓고 보니 포스터도, 뭔가 으스스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공포영화는 못 보면서도 공포 뮤지컬은 괜찮았다. 비틀스를 연상시키는 제목에서 음악적 영감도 같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편의 공연을 비틀스 곡으로 메우려면, 저작권료 또한 어마어마하겠는데. 공연을 예매하기 전에 좀 찾아보면 좋았겠지만, 모른 척 보기로 택했다. 1등이니까 평타 정도는 치겠지.


평일 밤인데도 공연장은 꽤 북적거렸다. 천운이었던지 앞자리가 비었다. LG아트센터는 좌석 간 단차가 낮아서, 머리 크고 상체가 긴 사람이 앉을 때 난감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문제는 공석 옆에 문제의 인물이 앉아서, 시야 확보가 백 퍼센트 만족스럽지 않았다. 몸을 왼쪽으로 한껏 기울여서 관람했는데, 그도 시야가 불편했던지 자꾸만 몸이 왼쪽으로 쏠렸다. 대두도 긴 상체도 그의 탓이 아니다. 며칠 전 다녀온 CGV는 단차도 높을뿐더러 누워서까지 볼 수 있는 리클라이너 좌석을 제공하는데, 극장보다 열 배 이상 비싼 LG아트센터에서 몸의 평형감각을 무시한 채 보고 있자니 힘들었다. 그럼에도 뮤지컬은 재미있었다.


죄수복을 입고 초록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을 가진 비틀쥬스의 등장으로 극이 시작되었다. 그는 유령이라서 산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가 너무 외롭다는 것이다. 산 자로부터 그의 이름을 세 번 호명받고 나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는 시종일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찾고 다녔다. 유령도 고독을 느낀다는 점이 우스웠다. 사람이 저승으로 갈 때, 질병이나 사고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울해서 자살하기도 할 텐데 죽어서도 외롭다는 설정은 슬퍼 보였다. 유령이 돼서도 사회적 교류가 필요하다니, 극 내향인인 내게는 반가운 진실이 아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 물론, 혼자 있다가도 가끔 친구도 만나고 모임도 나가지만, 다녀오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다. 저승 가면 성향이 바뀌나. 일단, 사회적 교류를 원하는 비틀쥬스는 본인을 구해줄 인간을 찾아 아담과 바바라의 집으로 들어선다.


이 공연의 주인공은 비틀쥬스가 아니라 리디아다. 소녀는 엄마를 잃고 방황하면서 죽은 엄마를 만나기 위해 비틀쥬스를 이용해 저승까지 다녀왔다. 그 안에서 아빠와 화해하고 비틀쥬스를 인간으로, 다시 경력 있는 신입으로 강등시키면서 유쾌한 소녀로 변한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순수 신입은 힘든가 보다. 오래전 신입 딱지를 뗀 나로서 미안함을 통감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웃고만 말았다. 엄청난 가창력을 가진 리디아를 계속 쳐다보다 문득 《웬즈데이》가 생각났다. 극을 마치고 원작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작품의 감독이 팀 버튼으로 같았다. 해골같이 하얀 피부에 시종일관 검정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리디아와 동명의 주인공인 웬즈데이가 똑 닮았다. 그러고 보면 감독이든 작가든 비슷한 결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가장 잘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이지 않을까. 그래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두서너 편 보고 나면 전편을 보지 않고도 그의 세계를 짐작할 수 있다.


《비틀쥬스》는 큰 특이점 없이 뮤지컬에서 인기 있을 만한 요소를 충실히 반영하며 두 시간 넘는 분량을 채웠다. 오랜만에 눈이 호강했다. 같이 간 엄마도 좋아했다. 배우들의 열연도 멋있었고 제일 놀라웠던 점은 무대장치다. 앞으로 쏟아질 것 같은 지붕이나 사선으로 기운 벽난로와 서랍장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공연에서 가장 감명받은 부분은 세계관의 발견이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19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봤던 《빅 피쉬》가 떠올랐는데, 이 또한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이었다. 소름 돋았다. 작가에게는 문체를 통해, 감독에서는 영상미나 연출 스 타일을 통해 같은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나도 팀 버튼처럼 누가 봐도 ‘나’인지 알아보는 작품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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