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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아로 Aug 14. 2021

패션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인가?

세아로 글 001

흔히 의복을 조형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패션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디자이너 개개인의 철학 차이일 뿐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디자인’이란 단어는 명백한 어원과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 디자인의 정의     

<멈추고, 디자인을 생각하다>의 저자 스테판 비알은, 디자인이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대량생산이 시작된 산업혁명에 대항하면서 윌리엄 모리스와 같은 기존의 공예가들이 당시의 생산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며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동시에 자본주의적이기도 하다. 이후 독일에서 대량생산과 기능주의를 받아들이며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의 형태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디자인이란 역사적 이념적 모순을 지니고 있으며, 자본주의적인 것과 사회주의적인 것, 그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것이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요구”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그냥 물건’과 ‘디자인된 무언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 스테판의 주장을 조금만 더 빌려오겠다. 그는 디자인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존재현 효과, 형태조화 효과, 사회조형 효과이다. 존재현 효과란 디자인된 무언가를 통해 사용자가 이전보다 나은 경험을 했냐는 것이다. 칫솔 A에 대하여, 사용자가 다른 칫솔보다 A를 사용함으로써 더 나은 경험을 했다면 A는 존재현 효과를 만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형태조화 효과는 이름 그대로 디자인된 무언가는 조형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효과는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형태조화 효과를 디자인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인식하는 경우인데, 현업에 있는 디자이너조차 이러한 오류를 범한다. 끝으로 ‘사회조형 효과’는 디자인된 무엇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된 사회가 있느냐는 것이다. 즉 디자인은 사회 개혁에 반드시 기여해야 한다.   

  

2) 패션과 공예     

패션은 시대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패션은 사회, 경제, 문화 등 복합적인 분야에 영향을 받는다. 흔히 의복과 신발, 장신구들을 종합적으로 패션이라고 부르지만, 패션은 그보다 훨씬 큰 범주에 속해있다. 향수, 자동차, 심지어 우리가 마시는 물도 어쩌면 패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의복과 장신구까지를 패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글에서는 ‘좁은 범주의 패션’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의복을 입기 시작한 건 매우 오래전의 일이다. 인간은 추위 및 더위, 타인의 시선, 전쟁 등의 상황에서 보호와 구별의 기능으로서 입었다. 점차 의복은 신분 상징의 요소가 되었으며, 시간이 흐른 현재의 인간은 주로 개성표출의 수단으로 옷을 입는다. (물론 앞서 언급한 기능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부터 의복을 비롯한 패션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반영된 것일까? 디자인의 출현 자체가 산업혁명 이후였으니, 패션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라 추측된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전에 존재해왔던 의복 문화들은 전부 무엇인가? 필자는 그것들이 공예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공예는 ‘실용적인 물건에 장식적인 가치를 부가하는 미술’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앞서 언급한 ‘형태조화 효과’와 관련이 있는데, 공예는 형태조화 효과만을 충족했으므로 디자인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대중과 디자이너들이 아름다운 형태만을 두고 좋은 디자인이라고 판단하는 오류는 공예와 디자인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3) 디자이너인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패션 브랜드가 존재하며, 지금도 수많은 브랜드의 죽음과 탄생이 목격된다. 문제는 미친 듯이 생겨나는 브랜드와 디자이너 중, 진정한 의미의 디자인을 진행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패션디자이너로서,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며, 사회 개혁까지 엿봐야 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 끝에 그것들을 충족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디자이너의 사명이다.      


입을 수 없는 옷을 만들고, 시즌별로 과하게 많은 선택지를 내놓으며 단순히 전에 없었던 모양, 색, 프린트 등으로 대중의 과소비를 유혹하는 현 패션 시장의 행태는 올바르지 않다. 소비자는 그 옷들을 통해 일시적인 경험과 형태적 만족감을 얻지만,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오랜 기간 패션계의 큰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많은 브랜드가 앞다투어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어필하고 있지만, 실상은 마케팅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매 시즌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의 옷을 생산해 내면서,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모순을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산성과 환경이 좋아진 현재는 누구나 패션 브랜드를 설립하는데, 하는 일이라곤 기존의 틀에 벗어나지 않는 의복 위에 본인의 로고만 다르게 프린트한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디자이너’인가? 우리는 패션디자이너라는 명칭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4) 마치며     

이 글은 패션업에 종사하는 필자 개인의 생각으로 작성되었으며, 동시대의 디자이너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글의 완성도가 매우 낮고, 본인의 생각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나은 전달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수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가끔은 멈추고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패션 산업의 전반적인 문제, 그리고 많은 패션디자이너가 정말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예쁜 옷을 만드는 공예를 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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