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코톨드 갤러리 웨인 티보의 전시를 보고
런던은 한 달여 앞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다. 런던 중심의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라는 대저택 중정은 매년 겨울 아이스 스케이트장으로 변하고, 거대한 트리와 화려한 조명은 사람들을 들뜨게 만든다. 같은 건물에 자리한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에서는 이 계절과 어울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달콤한 캔디와 화려한 케이크, 색색의 껌볼(gumball)이 꽉 들어찬 자판기와 잭팟 머신.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화려하고 유혹적인 이미지들이 벽면을 채운다. 20세기 미국인 작가 웨인 티보의 개인전 《웨인 티보: 아메리칸 스틸 라이프 (Wayne Thiebaud: American Still Life)》 (2025.10.10 ~ 2026.1.18)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티보는 전후(戰後) 미국을 상징하는 사물을 독특한 회화적 어법으로 재현했다. 파스텔 색조의 배경 앞에 케이크, 파이, 캔디, 핫도그, 아이스크림, 껌볼 자판기, 잭팟 머신 같은 일상적인 물건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 특별히 주목받지 않는 조연급 사물들은 티보라는 감독을 만나 '20세기 미국'이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주인공이 된다. 평범한 소재와 단순한 묘사가 특징인 티보의 정물화는 '미국 스러움'을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영국에서 열린 웨인 티보의 첫 미술관 전시로, 1960년대 그의 이름을 알렸던 대표 작품들을 통해 그가 미국 화단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었는지 보여준다.
전시 제목처럼 이 전시는 '스틸 라이프' 즉, 정물화를 선보인다. 티보가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적극적으로 '정물화'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샤르댕, 세잔, 모란디 등 정물화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이 글은 티보가 어떻게 정물화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고, 그것을 20세기 미국적 감수성으로 재해석했는지 살펴본다.
정물화를 하나의 장르로서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네덜란드에 도달한다. 풍요로웠던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발전한 정물화는 상징적 의미로 가득했다. 식탁 가득 놓인 음식과 기물은 물질적 부와 쾌락을 나타냈고, 반대로 먹다 남은 과일이나 썩어가는 채소는 종종 모래시계나 해골과 함께 놓여,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필연적인 부패의 과정 즉, 죽음을 상기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삶의 유한함을 상기시키는 장면이 그려졌음에도, 화면 속 사물들은 그림 속에 '박제'되어 영원히 변치 않는 영속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시 정물화의 가치는 작품이 표현하는 필연적인 죽음과, 그 필연적인 죽음을 초월하는 예술의 힘에서 왔다.
티보의 아이스크림 콘 역시 화면 속에서는 영원히 녹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람자에게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즉각적으로 죽음의 은유나 도덕적 경고로 읽히지 않는 것처럼, 티보의 그림도 시간의 흐름이나 삶의 덧없음보다 동심과 향수로 이해된다. 어릴 적 들렀던 베이커리, 녹지 않기를 바라며 쥐었던 아이스크림, 유혹적인 색채의 광고 이미지. 더 나아가 어린 시절의 순수한 욕망,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달콤한 유혹을 떠올린다. 실제로 티보는 사물을 직접 관찰하기보다 어린 시절 기억과 상업 이미지들을 겹쳐 그렸다. 그 결과 티보의 세계에서는 상징적 무게보다 감각적 즐거움이 앞서고, 개인적 기억을 환기시켜 관람자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제 18세기로 가 보자. 티보가 영향을 받았던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 1699-1779)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상적이고 소박한 사물에 주목한 화가였다. 이전 세대의 상징 중심적 정물화와는 달리, 사물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가지고 와, 그 존재감을 조용히 드러냈다. 무엇보다 빛, 색채, 질감의 표현과 단순한 구성으로 삶의 일부를 생생하게 담아낸 샤르댕의 정물화는 티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샤르댕이 극사실주의적 정교함으로 이를 수행했다면,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시대를 거친 티보는 감각적인 색채와 촉각적 질감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냈다.
평범한 사물을 예술 작품으로 격상시키고, 정물화를 당대의 삶을 보여주는 장르로 활용했다는 맥락에서 티보는 마네 또한 존경했다. 현재 전시가 열리고 있는 코톨드 갤러리 바로 옆 방에는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가 걸려 있다. 바 테이블 위에는 당시 파리에서 새롭게 유통되던 영국산 바스 맥주(Bass beer), 샴페인, 페퍼민트 리큐어가 놓여 있다. 이 사물들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낭만과 혼잡이 뒤섞인 19세기 파리의 밤 문화를 대변하는 풍경의 일부이다.
티보의 디저트 역시 시대와 장소성을 담는다. <Caged Pie>, <Cakes>, <Peppermint Counter> 등에서 달콤한 디저트들은 상점 진열대 위에 놓여 있다. 쇼윈도에 가지런히 진열된 케이크와 파이는 욕망을 자극하는 소비의 상징이다. 19세기 파리에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바 테이블이 있었다면, 20세기 미국에는 대량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상점 진열대가 있었다. 티보의 정물은 그 시대의 풍경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티보는 폴 세잔과 조르조 모란디에게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잔의 정물화는 그가 사물의 구조와 본질에 얼마나 집요하게 접근했는지를 보여준다. 세잔은 정물화를 회화적 실험의 장으로 삼았고, 그로써 정물화가 모험적인 장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세잔의 개인적인 성취임과 동시에 정물화의 새로운 도약이었던 것이다. 현대미술의 기본 바탕이 된 세잔의 유산은 사물의 형태와 전체 구성과 구도에 대한 티보의 고민에서도 엿보인다.
티보의 그림에서 단순한 형태, 몇 번의 붓질로 완성된 듯한 화면에는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와 공유하는 미학이 있다. 티보는 모란디의 그림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모란디의 그림에서 중앙에 배치된 물건들이 놓일 공간이 충분치 않아 사물들끼리 꽉 붙잡힌 듯한 압박감을 주는 구도를 짚어내며, 이러한 힘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물리적으로 몰입하게 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신체적 공감 전달(physical empathy transfer)"이 작품을 즐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티보의 그림에서도 이러한 "신체적 공감 전달"이 나타난다. 때로는 모란디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구도로, 때로는 실제 케이크 크림처럼 발린 두툼한 물감의 질감을 통해 물질적인 현실감을 구현한다. 물리적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감 표현을 강화한 부분은 그가 팝 아트와 구별되는 가장 분명한 지점이기도 하다.
티보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함께 전시되기도 했고, 종종 팝 아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소재나 표현 방식이 대중문화와 밀접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만화, 애니메이션, 포스터 디자인 등 상업 예술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즉시 공감할 수 있는 친밀한 소재와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적 감각은 이러한 경력에서 비롯된 그의 강점이다.
그러나 티보의 예술은 팝 아트의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었고, 티보는 자신을 '전통적인 화가'로 정의했다. 그의 특징적인 두터운 물감과 붓질의 흔적은 워홀의 실크스크린 같은 매끈한 기계적 표면과는 정반대다. 케이크 위의 크림은 실제처럼 손가락으로 푹 찍어볼 수 있을 것만 같고, 캔디는 설탕물이 마르며 남긴 단단하고 끈적한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붓질은 마치 아이싱을 올리는 손의 움직임과도 같다. 이처럼 손맛을 숨기지 않는 티보의 회화는 팝 아트 특유의 건조한 질감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각 시대는 고유한 정물화를 탄생시킨다 (Each era produces its own still life)".
웨인 티보의 말처럼 정물화에는 각 시대가 응축되어 있다. 예술가들이 몇 가지 사물에 동시대의 삶을 압축해 담아왔듯, 티보 역시 자신이 발견한 소재들로 자신의 시대를 그려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식탁, 18세기 샤르댕의 주방, 19세기 마네의 바 카운터에 이어, 20세기 티보의 쇼윈도는 욕망의 풍경이자 시대의 단면이다. 티보는 일상의 사물을 통해 미국 문화의 정수를 포착했고, 정물화라는 오랜 장르를 새로운 시대의 감각으로 갱신했다.
전시장을 나와 다시 한 해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사람들 틈에 섞인다. 티보가 포착했던 시대의 풍경을 떠올리며 문득 생각한다. 내년, 10년 후, 그리고 그다음 세대를 규정할 사물과 장면은 무엇일까. 다음 시대의 정물화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디저트의 단맛처럼 오래 남는다.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