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내셔널갤러리 밀레 특별전 리뷰
Life on the Land, 밀레가 보여주는 조용한 시골의 삶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특별전 ≪Millet: Life on the Land≫(2025년 8월 7일~10월 19일)가 열리고 있다. 약 50년 만에 영국에서 열린 밀레 전시로, 그의 사망 150주년과도 맞물린다. 방 하나 크기의 전시장, 짙은 푸른색 벽에는 열 점 남짓의 작품이 걸려 있다. 미디어 아트로 가득 찬 현대미술관에서 피로해진 눈은, 이곳 밀레의 소박한 인물 풍경 앞에서 숨을 고른다.
전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레의 화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아우른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몇 년과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뒤 1850년대에 제작된 그림들이다. 밀레는 1849년 바르비종에 정착한 이후, 농민들의 삶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작업을 하게 되면서, 바르비종파의 핵심 화가로 자리 잡는다. 특히 밀레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만종>과 <키질하는 사람>은 가장 평범하고 기초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와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감각이 찾아온다.
만종 기도 종소리의 울림
전시장 입구 맞은편 정면에는 잘 알려진 <만종(The Angelus)>(1859)이 걸려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특별 대여한 이 작품은 실물로 보았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기도하는 두 인물과 발치의 감자 바구니는 제목만 듣고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장면이다. 그에 비해 원경에 어렴풋이 나타난 성당이나 하늘의 오묘한 빛깔은 그림을 직접 마주했을 때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성당의 종소리가 하루 일과의 끝을 알리고, 두 인물은 일을 멈추고 저녁 기도를 올린다. 1865년 밀레는 <만종>이 탄생한 배경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만종은 내가 밭일을 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다. 당시 할머니는 종소리가 울리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일을 멈추고, 경건하게 모자를 벗은 채로 ‘가엾은 죽은 이들을 위해’ 만종 기도를 드리게 하셨다.” 노동 끝에 감사와 추모의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감동을 준다. 이는 주어진 일에 충실한 인물들이 주는 울림이며, 연민을 가진 이들에게서 배우는 인간됨이다.
석양이 드리운 지평선과 성당의 실루엣은 경건함을 더하며, 차분한 색조의 화면 전체는 명상적인 분위기로 가라앉는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하고 정적인 장면이다. 다만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만이 유일하게 움직임을 나타낸다. 성당의 종소리에 놀란 듯 날고 있는 이 작은 존재는 그림 속 풍경에 ‘찰나’의 감각을 더한다. 순간을 영원 속에 붙잡아두듯 찰나의 장면은 캔버스에 담겨 언제나 그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노동의 숭고함
<만종>으로부터 약 10년 전, 밀레는 <키질하는 사람(The Winnower)>(1847-8)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1848년 프랑스 살롱전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은 이 그림은 시골 노동의 현실을 다룬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내셔널갤러리 소장작은 세 점의 “키질하는 사람”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나머지 두 점은 루브르와 오르세가 소장하고 있다.
농부의 키질하는 움직임. 특별할 것 없는 소재는 밀레의 붓을 통해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키를 움켜쥔 손, 단단히 버틴 다리와 굽은 무릎은 반복된 노동에서 체득된 안정적인 자세와 숙련된 기술을 드러낸다. 곡식은 키 위에서 파도가 오르내리듯 포물선을 그리며 흩날린다. 그 장면은 너무도 생생해 곡식이 부딪히는 소리마저 들려올 듯하다. 금빛을 발하는 낟알은 육체노동을 성스러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노동이 가져다주는 보상—그 조차 크지 않지만—을 은유한다. 만종기도를 올리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결의 위대함과 경건함이 깃들어 있다.
시대를 넘어 건네는 위로
<키질하는 사람> 속 공중에 떠 있는 낟알들과 <만종>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두 장면은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우유 나르는 하녀(A Milkmaid)>에서 화가는 은빛 달이 비추는 풍경 앞에 우유통을 어깨에 진 여인이 생각에 잠긴 듯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았고, <그루슈의 거위치는 소녀(The Goose Girl at Gruchy)>에서는 거위를 돌보는 소녀가 푸른 언덕을 뒤로하고 손에 얼굴을 기댄 채 쉬는 장면을 스냅샷처럼 포착했다.
내셔널갤러리 큐레이터 사라 헤링(Sarah Herring)은 이렇게 말한다. “밀레는 농촌 노동자들에게 존엄과 고귀함을 부여하고, 공감과 연민을 담아 그들을 드로잉과 페인팅에 묘사했다.” 밀레가 그린 장면들은 당시 농촌의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이 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점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노동과 쉼, 그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 견고한 가치로 남는다. 밀레는 구체적인 현실의 장면으로 오히려 이상을 드러내고, 철저히 현재적인 순간으로 초월적 의미를 환기한다. 밀레의 그림이 우리를 위로하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