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해방

서스페리아

by 다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남의 시선을 빌리지 않고 나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려 노력한 것의 발자취 비슷한 것이다. 세 번이나 본 영화지만 여전히 체화하지 못 했기에 다시 보면서 이끌어낸 것을 어눌한 언어로 남겨보고자 한다. 다른 이의 생각은 참고하지 않았다!


-갈등


70년대 독일의 상황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극좌파 운동과 기존의 나치였던 특권층이 새로운 권력층에 편입되는 일이 발생하는 등 삼엄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표면적으로 영화에서 나타나는 갈등 구도는 좌파-우파, 극단 내에서는 마르코스파-블랑파, 수지와 수지를 둘러싼 보수적인 가정환경(성 엄숙주의)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내면적인 이야기를 과거-지향해야 하는 현재로 이해하였고 이는 뒤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우선 여기서 극단은 하나의 공동체이자 사회이다. 극단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본다면 마르코스는 기존에 있던 보수세력이며 젊은 단원을 착취하는 구도가 있음이 극명해진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마더 서스피리움이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육신을 골라 '다시 태어난다.' 무용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과 같은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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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자궁


왜 수지는 손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가. 손은 창조하고 부순다. 이 영화에서는 '부순다'에 조금 더 힘이 실려있는 편이다. 수지는 시종일관 순진한 어린 양처럼 보이지만 I am she를 외치는 모두의 상징적 어머니임을 안다면 손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하다. 그렇다면 수지는 모든 것을 의식한 채로 베를린에 온 것인지 혹은 알면서 연기했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수지의 정체성은 태어날 때부터 얻은 선천적인 것이며 무의식적인 욕망만이 정체성이 발현된 공간이다. 실제로 수지가 외부의 현상 세계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끈 것은 꿈을 꾸다가 자신이 누군지 안다며 소리를 지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면, 앞서 말했던 마르코스의 새로운 육신으로의 부활은 탄생이고, 탄생은 어머니의 영역이다. 수지가 그들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았지만 수지는 마르코스를 품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밀어낸다. 대부분의 단원이 죽음을 구걸하였을 때 수지는 죽음을 주었다. 수지를 원초적 어머니, 파괴하는 어머니로 해석할 수 있다.

"죽음이 연속성과 미분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죽음에 대한 욕망, 그리고 죽음의 매력은 어머니와 원초적으로 하나였던 단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괴물(66-67p)-

고전적인 죽음의 끔찍함보다는 죽음이 안정과 위로처럼 다가오게 표현이 역설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해방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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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


영화 전반에 걸쳐 언급되는 폴크(Volk)는 민족, 국민을 의미한다. 블랑은 이 춤을 힘들었던 시기를 버텨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움직임이라며 당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것이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혹은 마녀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존속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폴크가 마르코스의 부활을 위한 의식임에 초점을 맞추겠다. 폴크의 의상이 BDSM을 은유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며 그러므로 나는 폴크를 섹스로 해석할 것이다. 정확히는 여성의 입장에서의 섹스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폴크를 추는 수지를 성적으로 표현하고, 대놓고 대사에서 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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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보지만 이 영화도 남성의 시선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말은 못 하겠다. 남성 감독의 시선에서 철저히 대상화 된 장면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비판할 부분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여성을 기준으로 섹스에 대해 표현한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섹스는 잉태로 이어지는 해석이 보편적이다. 고대에 생리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생리를 잉태 가능성-남성과 차별화되는 여성의 특징, 여성만이 가지는 능력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고어를 차용한 이유가 여성의 잉태를 원초적으로, 그리고 전복적으로 해석하기 위함에 있었다는 어쩌면 안일할 수도 있는 해석을 조심스럽게 내놓겠다.


-해방


'증인 세우기 놀이'를 하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 했다. 요셉을 의식의 증인으로 세우고, 경찰들을 악몽의 증인으로 초대하는 장면에서 왜 굳이 외부인의 시선을 빌려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요셉은 2차대전 중 아내를 잃었다. 구할 수 없었던 것이 필연적이라고 믿는 요셉에게 마녀들은 당신은 그녀를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은 것이라며 여자의 말은 절대 안 듣는다며 윽박지른다. '잊지 말아라'. 치욕스러운 과거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유혈이 낭자한 의식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악몽에 초대하는 것도 절대 잊지 말라는 각인과 같다. 개인적이기보다 정치적이다. 숲을 보면 역사에 대한 것이며 나무를 보면 개인의 과오와 상처와 기억을 말한다. 앞서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립이 이곳에서 나타난다. 둘은 서로를 외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봐야한다. 잊지 말고, 바라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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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지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는 것은 수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다. 그러나 증오, 공포,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워지지 않아 벽에 남아있는 것을 보여준다.



-비체의 생존


보통의 공포영화는 비천한 것-귀신, 괴물, 좀비 등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제거하는 식으로 결말이 난다. 관객은 주로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입하며 비체에게 받는 위협에 몰입하고, 그들의 위치가 정상을 되찾았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서스페리아는 비체를 제거하지 않는다. 비체가 끝까지 살아남기 때문에 고전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여성괴물'은 주체를 상징계에 속하며 비체를 '비천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세계에 속하는 이들로 정의하고, 비체는 이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칭한다. 이 책에서는 여성의 신체도 비체로 해석한다.

"그러나 주체는 절대 아브젝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면서 자기로 하여금 아브젝션의 공간, 즉 의미들이 무너지는 그 공간에 머무르라고 유혹한다." -여성괴물(36-37p)
"언어 안에서, 언어를 통해서, 그리고 의미에 대한 욕망을 통해서 구성된 주체는 무의미의 공간, 즉 비체에 의해서 말해진다." -여성괴물(37p)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비체를 정화시키는 것이 종교의 기능이었지만 이런 종교의 역사적 형태는 붕괴되었고, 이제 정화의 과정은 예술이라는 위대한 카타르시스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여성괴물(44p)


"공포영화는 결과적으로 비체를 제거하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다시 그리기 위해 비체(시체, 신체적 배설물, 여성괴물)와 대면하도록 한다." -여성괴물(44p)


비체의 모든 특성을 지닌 수지는 여성괴물이며 위협적으로 느껴지기에 좋은 대상이다. 그러나 수지는 대상이 아닌 주체이고, 죽음과 기억을 거두며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위로가 되었다. 죽지 않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여성이 스크린에 나타난다는 것에는 말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작용한다. 비명을 지르며 살해되는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창조와 파괴를 자유자재로 실행하는 절대적인 여성 캐릭터의 존재는 신선했다. 서스페리아는 찝찝하기보다는 개운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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